Page 128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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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우리족보 보서에서 휘 추(諱 錘) 휘 위옹(諱 渭翁)에 대한 기록(記錄)



                    ㈎ 족보(族譜  - 大同譜)


                        ○ 청장보(靑裝譜) - 가보(家譜) 1756년 발행

                           시조(始祖)는  알지(閼智)  추(錘)는  일선군(一善君)  위옹(渭翁)은  봉(封)  실직
                            군왕(悉直郡王)
                          「 公之子爲 悉直郡王渭翁而三陟金氏之分系自悉直君始然---」
                               공 지 자 위   실 직 군 왕 위 옹 이 삼 척 김 씨 지 분 계 자 실 직 군 시 연

                           - 공의 아들은 실직군왕 위옹이다. 삼척김씨는 실직군으로 분계되다.



                        ○ 을묘보(乙卯譜) 1795년 발행

                           보서(譜序)에  위옹(渭翁)을  봉(封)  삼척(三陟)하니  기자손(其子孫)이  종지
                            (宗之)하여 시위(是爲)삼척김씨(三陟金氏)라 ---」

                          「해석 : 위옹에 대하여 봉 삼척하여 그 자손이 삼척김씨다. 한 것은 삼척의
                              고명(古名)이  실직이었다.  그래서  실직을  삼척으로  개칭한  것으로  본다.
                              실제 여러 보서에서“실직은 지금의 삼척이라 봉 삼척 하니 삼척김씨라”
                              하는  기록이  있다.  삼척군(三陟君)  봉군(封君)은  휘(諱)  추(錘)公  께  고려
                              광종13년(962년)에  봉(封)  삼척군(三陟君)되셨다.(1905년  발행  삼척김씨
                              세보 권지-중 김추(金錘) 방주(旁註)에 표기(表記)되다.)」


                        ○ 기유보(己酉譜) 1849년 발행


                           譜序중「鼻祖乎大輔諱閼智요 中派於悉直君諱渭翁하고 姓貫以三陟者는
                                      비 조 호 대 보 휘 알 지      중 파 어 실 직 군 휘 위 옹        성 관 이 삼 척 자
                            以悉直君之封於 三陟而封爲貫이 亦古法也라,,,」
                             이 실 직 군 지 봉 어    삼 척 이 봉 위 관      역 고 법 야

                        ○ 갑술보(甲戌譜) 1874년 발행(前甲戌譜)

                           譜序중「始而有新羅大輔公하고 中而爲悉直群王하니 其源流가....然則
                                      시 이 유 신 라 대 보 공        중 이 위 실 직 군 왕        기 원 류       연 칙
                            異日之経緯而棟樑者- (이하 6행에서 16행까지 원문에 대한 족보해석을
                             이 일 지  경  위 이 동 량 자
                            원문대로 기재하다)」
                           해석  :  삼척김씨는 신라 대보공에서 시작하여 중간에 실직군왕이 있으니 지금

                                    부터  수  천  년이요  50세(世)가 되어  그 원류(源流)가 멀다고  하였다.
                                    그런데도  계파와  소목(昭穆)이  정연하여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으니
                                    사람들로서 하기 어려운 일이니 어찌 그리 훌륭한가. 쌓아온 바를 돈
                                    독히 답습(踏襲)하지 않았다면 어찌 이렇게 될 수 있었겠는가?

                                「하루는  김낙호군과  김원직  어른이  지난번  보첩을  가지고  나에게  와  서
                                    문을 청하면서 말하기를“보첩을 만든 지 오래여서 장차 보첩을 인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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