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2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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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附記)太師公派乙巳譜記錄에서  悉直郡王이  中祖로  承修하고  先祖
                                        태 사 공 파   을사  보 기 록       실 직 군 왕      중 조     승 수       선 조
                              께 未安하다고 表한 記錄이다.
                                 미 안         표     기 록


                         〇  謹按新羅敬順王之後裔各宗人譜冊皆以八王子受封爲分貫之始祖則陟金
                              근 안 신 라   경 순 왕 지 후 예 각 종 인 보 책 개 이 팔 왕 자 수 봉 위 분 관 지 시 조 칙 척 김
                               亦當依此例修譜者也而年譜以君王先祖爲中祖承修以來歲己久矣於推
                                역 당 의 차 례 수 보 자 야 이 연 보 이 군 왕 선 조 위 중 조 승 수 이 래 세 기 구 의 어 추
                               本叙宗之義事涉未安故書於篇首以表追慕之意嗣郡王 」--
                                본  서  종 지 의 사 섭 미 안 고 서 어 편 수 이 표 추 모 지 의 사 군 왕
                           「경순왕의  후예  각종인의  보책은  모든  수봉(受封:군호를  받은  것  추공
                               (錘公)은  삼척군(三陟君))한  왕자(王子)로  분관의  시조(分貫始祖)로  하였다.
                               삼척김씨도 의당 수보자(修譜者:보서를 닦은 자)가 예에 따라야 하는데,

                               중조로  군왕(郡王)선조를  년보에  고쳐  받은  지  오랜  세월에  종지의(宗
                               之義)로  차례를  천거하지  못하고  천위(遷位)한  일이  편치  않아(미안하
                               여) 편수(篇首)에 군왕(郡王)이 추모(追慕)의 뜻을 적는다.






                3) 검증과정에서  목도(目睹)한 주요(主要)  기록



                    ① 고증문헌과 각종사료 그리고 신라김씨  각관세보는 한결 같이 휘 추공의 군호를
                        삼척군으로  기록하고  있다.  일선군(一善君)  군호(君號)는  찾아  볼  수  없다.  또
                        한  은일의사자수불굴어려(隱逸義士自守不屈於麗)라  하여  위상(位相)을  폄척(貶
                        斥:남의 인망(人望)을 깎아내려 배척함, 폄출)하다.

                    ②  신라세보유적(新羅世譜遺蹟)상하편전(上下編全)영(盈)십일면(十一面)에  추공(錘公)  지
                        서(只書)에「門下侍郞右僕射封三陟君○按麗史則公以文章學士名於世王嘉之特給一千戶

                        (문하시랑우복사봉삼척군○안려사칙공이문장학사명어세왕가지특급일천호)하다.

                                                        주(註) : 신라세보유적보책은 규장각도서 우(右)2518로 보장되어있다.

                    ③ 경신(庚申) 맹하에 후예 통정대부 중추원 의관 기영(麒榮)공이 1921년 발행 신유보
                        (辛酉譜) 보서문에「현대에는 문헌이 많아져서 역사책을 상고해서 구보(舊譜)의 틀
                        린 부분을 교정하고 전번 기록에서 빠진 자(字)를 바로 잡으면 전인(前人)들의 기

                        술이 비록 잘 갖추어졌으나 오늘 날 보충해야 할 부분이 없지 않다.」하셨다.

                                              주(註) : 이 말씀은 전 기록에 잘못이 있다면 바로 잡아 기록하라는 말씀으로 본다.

                    ④  갑술년(1874년)  숭록대부  행이조판서겸  홍문관제학  안동(安東)  김세균(金世均)
                         공이“갑술보서문(甲戌譜序文)”으로「하루는  김낙호(金洛鎬)군과  김원직(金源
                         職)어른이  지난번  보첩을  가지고  나에게  와  서문을  청하면서  말하기를“보첩
                         을 만든 지 오래여서 장차 보첩을 인쇄하려고 합니다. 우리 김씨는 신라와 고




              132    三陟金氏  宗史  總覽  修訂增補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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