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5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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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김씨 시조는 현행과 같이
삼척김씨(三陟金氏)보학연구위원(譜學硏究委員) 김원병(金源秉)
나는 현행족보와 같이 실직군왕 위옹을 삼척김씨 시조로 모셔야 된다고 주장
하는 사람입니다.
서기1018년경에 실직군왕 위옹 공께서 삼척김씨를 창씨 하여 1000여년이나
시조로 모셔 왔는데 지금에 와서 왜! 바꾸자고 하는지 참으로 답답합니다.
“김추”공은 실직군왕 위옹 공의 아버지일 따름이지 삼척김씨와는 아무런 관
계가 없습니다. 삼척김씨의 창씨 연대를 살펴보면“김추”공은 950년에 탄생하
시고 962년에(고려광종13년)고려조에서 봉하는 삼척군의 봉작을 받지 않고 은일
생활을 하시다가 아버지 묘소가 있는 경기도 장단에서 절명 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실직군왕 위옹 공은 980년에 탄생하시고 1018년(38세)에 삼척김씨를
창씨하시고 본인이 시조가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고려시대의 삼척”이란 한국
의 지방사를 살펴보면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초기에는 지방행정을 정비하지 못하
고 신라의 제도를 그대로 따르는 한편으로 지방에는 수령을 파견하지 못하고 그
지역의 힘 있는 호족들의 자치에 맡겼습니다. 삼척지역도 당시의 호족들이 지방
자치의 형태를 취하였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삼척을 본관으로 하는 성관 즉 삼척
김씨 등이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고려 후기에 들어와서는 새로운 호족들이 출현합니다.
▫ 개성부윤을 지내고 삼척군 대광에 책봉되었던 박경원을 시조로 하는 삼척박씨
▫ 목조의 비인 효공왕후의 아버지이며 상장군이었던 이강제를 시조로 하는
삼척이씨
▫ 충열왕 때 이부시랑을 지내고 삼척군으로 책봉 받은 진이귀를 시조로 하는
삼척진씨 등의 호족들이 새롭게 자리를 잡으면서 삼척의 지방문화를 한층
다채롭게 꽃을 피우게 됩니다.
강원도사, 삼척지방사를 제외한 타 문헌들(규장각 경주김씨)은 믿을 수 없다.
대충 유사하게 적어놓은 문헌에 불과하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경순왕 비석(1748년에 입석)”내용에 왈 은열위경주김씨
(曰殷悅爲慶州金氏) 은열은 경주김씨가 되고, 라고 기재하여 놓고 왜! 왈추삼척
군(曰錘三陟君)이다. 라고만 하고 추는 삼척김씨가 되었다고 기재하지 않았는가.
삼척김씨가 창씨 된지가 730년이나 되었는데.
제2편 삼척군기(三陟君記) 1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