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0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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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우리 삼척김씨는 대보공을 비조로 삼아 실직군왕에 이르러 삼척을
관향으로 삼았는데---」
또 현대에는 문헌이 많아져서 역사책을 상고해서 구보라 틀린
부분들 교정하고 전번 기록에서 빠진 자를 바로 잡으면 전인들의
기술이 비록 잘 갖추어졌으나 오늘 날 보충해야 할 부분이 없지
않다.」
「시조를 대보공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나 여러 왕자들에게 땅을
나누어 준 후에는 각기 그 땅으로 관향을 삼았으니 우리 조상
실직군왕 역시 삼척을 봉지로 받아 이로 인해 삼척을 관향으로
삼은 것이다.」
부기(附記) : 낙영공(洛榮公)근서 서문에「제왕자 조토지후 각기
지로 위관하니」는 엄격히 말해 경순왕 팔 왕자에게 봉군(封君)을
사본(賜本)하시고(추께는 삼척군) 각 왕자로 하여금 그 땅(추께는
삼척)을 관향(貫鄕)으로 삼게 했다. 이것이 바른 해석이 된다.
그리고 신라세보유적(新羅世譜遺蹟) : 신라김씨계보를 엮어놓은
사기(史記)에 추(錘) 삼척군(三陟君)께 식읍(食邑) 일천호(一千戶)
를 특별히 하사(下賜)하신 기록이 이를 증거 한다.
○ 갑술보(甲戌譜) 1934년 발행 (後甲戌譜)
보서중「錘 三陟金氏之譜는 不然하니 金氏自新羅大輔로 之高麗悉
추 삼 척 김 씨 지 보 불 연 김 씨 자 신 라 대 보 지 고 려 실
直王은 王室也니 其系之徵이 有國史矣라 悉直은 卽今之三陟
직 왕 왕 실 야 기 계 지 징 유 국 사 의 실 직 즉 금 지 삼 척
而王之 子孫이 仍居焉하여--」
이 왕 지 자 손 잉 거 언
해석 : 김씨는 신라 대보로 부터 고려 실직군왕에 이르기까지는 왕실이
어서 그 세계가 국사에 실려있다. 실직은 지금의 삼척인데 왕의
자손이 그대로 눌러 살았다.
○ 경자보(庚子譜) 1960년 발행
譜序중「金氏得姓이 自新羅閼智王으로 始하고 分貫은 自悉直王으로
김 씨 득 성 자 신 라 알 지 왕 시 분 관 자 실 직 왕
始하여--」
시
「김씨가 득성한 것은 신라 알지왕으로부터 시작하고 분관은 실직군왕에
서 시작되어--」
130 三陟金氏 宗史 總覽 修訂增補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