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3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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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를 거쳐 오는 동안 대대로 드러난 분이 많아서 갑족(甲族)이라고 일컬어졌
으나 근래에 떨치지 못하여 양명입신(揚名立身)해서 조상을 영광스럽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계(先系)라도 잘 정리하여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
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서문을 쓸 만 한 사람이 아니라고 사양
(辭讓)하면서 말하기를「나의 말은 기록할 수 있고 그대의 정성은 가상하나
그대는 마땅히 해야 할 일만 하면 되지 가세가 떨치고 떨치지 못한 것은 논
할 바가 아니다. 대저 침체되고 현달 하는 것은 군자(君子)들의 명운(命運)이
라고 하여 마음을 쓰지 않았다. 어두워졌다가 다시 드러나고 굽혔다가 펴지는
것 역시 이치이다. 삼척김씨는 오래 살아온 바를 답습해 왔으니 크게 빛나고
떨칠 것은 손가락을 굽혀 세지 않아도 불을 보는 것처럼 확실하다. 황하(黃
河)처럼 큰물도 중국을 거쳐 복류(伏流)하고 장차 들보로 쓸 큰 나무도 반드
시 그 뿌리가 고생을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후일 나라를 다스릴 큰 인재가
김씨 문중에서 나오지 않을 줄 어찌 알겠는가?」“우선 이처럼 써놓고 기다
리겠다” 라고 하였다. (참조 : 본기(本記)3항 1목 보서 참고)
주(註) : 이 말씀의 참 뜻이 무엇인지? 김낙호님 김원직님 선인(先人)께서 부탁한 말씀이 자못 궁금하다. 알고 싶다.
⑤ 우리 삼척김씨세보 각 보서 서문을 보면 휘(諱) 위옹(渭翁)公에 대한 위상 기
록이 보서(譜序)마다 다르게 표기(表記)하고 있다.
○ 中派於 悉直君 諱渭翁하고 姓貫之貫三陟者는 以 悉直君之封於 三陟而
중 파 어 실 직 군 휘 위 옹 성 관 지 관 삼 척 자 이 실 직 군 지 봉 어 삼 척 이
因其封爲貫이 亦古法也라.
인 기 봉 위 관 역 고 법 야
○ 金氏는 卽前代王者之後로 分封三陟以來---
김 씨 즉 전 대 왕 자 지 후 분 봉 삼 척 이 래
○ 高麗悉直王은 王室也니---悉直은 卽今三陟而王之子孫이仍居焉--
고 려 실 직 왕 왕 실 야 실 직 즉 금 삼 척 이 왕 지 자 손 잉 거 언
○ 三陟之爲金은 以大輔公으로 爲鼻祖하여 逮于悉直郡王이 以陟爲貫--하다.
삼 척 지 위 김 이 대 보 공 위 비 조 체 우 실 직 군 왕 이 척 위 관
주(註) 위상이 일관성이 없다. 이는 서문(序文)을 쓰시는 분 의사에 따라 쓰여 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위옹의 봉군(封君)군호가 실직군(悉直君)이였다. 그리고 실직(悉直)은 곧 삼척(三陟)이다.
그러므로 실직군(悉直君)은 삼척군(三陟君)이다. 고로 실직군왕은 삼척김씨라고
합리화(合理化)하지 않았나 추리(推理)해 본다.
⑥ 추(錘)공(公)의 군봉(君封)이 삼척군(三陟君)이라는 기록은 을사파보(1905년)가
삼척김씨 족보 가운데 유일(唯一)한 기록이다. 그리고 동 파보 위옹 방주에
「실직군왕이 중조(中祖)로 천위(遷位)한데 대한 미안(未安)함을 표하다.」
(참조 : 본기(本記)3항 2목 을사파보 참고)
⑦ 신라삼성연원보 40쪽, 계림김씨연원보 권지 47쪽 주(宙)면(面) 상단 추(錘)지서(只
書) 48쪽 상단에 봉(封) 언척군(彦陟君) 사본척김시조(賜本陟金始祖)라 기록하다.
위옹(渭翁)은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실직군(悉直君)하다.
주(註) : 언척군(彦陟君)은 삼척군(三陟君)을 오기(誤記)하다.
제2편 삼척군기(三陟君記) 1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