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9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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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고 합니다. 우리 김씨는 신라와 고려를 거쳐 대대로 드러난 분이 많
아서 갑족(甲族)이라고 일컬어 졌으나 근래에 떨치지 못하여 양명입신해
서 조상을 영광스럽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선계(先系)라도 잘
정리하여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서문을 쓸 만 한 사람이 아니라고 사양하면서 말하기를 나의 말
은 기록할 수 있고 그대의 정성은 가상하나 그대는 마땅히 허여야 할
일만 하면 되지 가세가 떨치고 떨치지 못한 것은 논 할 바가 아니다.
대저 침체되고 현달 하는 것은 군자(君子)들이 명운(命運)이라고 하여
마음 쓰지 않았다. 어두워졌다가 다시 드러나고 굽혔다가 펴지는 것
역시 이치이다. 삼척김씨는 오래 쌓아온 바를 답습해 왔으니 크게 빛
나고 떨칠 것은 손가락을 굽혀 세지 않아도 불을 보는 것처럼 확실하
다. 황하(黃河)처럼 큰물도 중국을 거쳐 복류(伏流)하고 장차 들보(棟
梁:동량)로 쓸 큰 나무도 반드시 그 뿌리가 고생을 하게 마련이
다.--우선 이처럼 써놓고 기다리겠다. 끝」
갑술년 계추에 숭록대부(崇祿大夫)
행이조판서겸홍문관대제학(行吏曹判書兼弘文館大提學)
안동(安東) 김세균(金世均)은 씀
○ 갑진보(甲辰譜) 1904년 발행
譜序중「--金氏는卽前代王者之後로分封三陟以來千數百年에 --」
김 씨 즉 전 대 왕 자 지 후 분 봉 삼 척 이 래 천 수 백 연
삼척김씨는 전대(前代) 왕자(王者:敬順王을 칭하는지 아니면 경순왕 제8자
휘 추공을 칭하는지?) 후에 삼척으로 분봉(분관을 의미하는지, 군호를 삼
척군으로 하였다는 것인지?)된 이래 천 수 백년, 휘 추공, 휘 위옹에 대
한 기록이 분명하지 않다.
○ 신유보(辛酉譜) 1921년 발행
譜序중 「吾 三陟之爲金은 以大輔公으로 爲鼻祖하여 逮于悉直郡王
오 삼 척 지 위 김 이 대 보 공 위 비 조 체 우 실 직 군 왕
에 以陟爲貫--」
이 척 위 관
「且 現代文獻이 益闡에 考諸乘史하야 校其譜之誤하고 正其前錄之漏
차 현 대 문 헌 익 천 고 제 승 사 교 기 보 지 오 정 기 전 록 지 루
하니 前人之述이 雖備나 不可無今日之隨補也라」
전 인 지 술 수 비 불 가 무 금 일 지 수 보 야
中樞院議官 後裔麒榮 謹序
중 추 원 의 관 후 예 기 영 근 서
「始祖大輔公一也而諸王子胙土之後 各以其地로 爲貫하니 吾祖悉直郡
시 조 대 보 공 일 야 이 제 왕 자 조 토 지 후 각 이 기 지 위 관 오 조 실 직 군
王亦受封三陟而因貫三陟者也라---」
왕 역 수 봉 삼 척 이 인 관 삼 척 자 야
後孫 洛榮 謹序
후 손 낙 영 근 서
제2편 삼척군기(三陟君記) 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