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9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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而咨决其所疑焉이라又於世味에泊如也하여避近名而耻自衡하고每遇科日에輒不肯赴하고深自
蹈晦하니人或惜其過於自晦則日吾斯之未能信이라하고夷然不以爲意而彼俗儒之奔走汨沒於塵
臼中하여迷而不返則殆哉라輒適然日命也라益俛首하고書日孜孜不懈하여至忘寢與食하니雪峰
姜公栢年이以江原觀察使로來到本郡하여先訪公於蓬華之下아니與語에輒大奇之하여深加舞賞
하고欲與之歸하니如臼季之於冀缺而知公非其招不徃之意하여終不果하고即馳啓上達하니天聽
孝廟하여遂以禮下聘하니公與孝子崔公鎭厚俱應召赴闕하니上이引見하고欲置諸左右而期見啓
沃之益하여勉諭以補闕之意하니公이愠恐固 辭求退乃己라 上이知其志不在祿位而在林泉하고
甚恨之라乃使送還山而賜詩하고嘉之日東有吉地하니君子居之라屋上靑山이요門前流水라仁者
樂也오智者知之하고又命洋宮生하여特書三陟處士金鑽하여楣諸太學하니其好賢樂善之誠이切
於上而公之所養은推此票之라自是耻得虚名之聞世而深有取於主靜持敬之語하고仕宦으로既不
能奪其志하고外事로又不足以撓其心則以此篤好之誠으로加靜養之功이면可謂見其進而未見其
退也라嘗患遐瓯窮鄉에雖老於詩文者라도於禮則素昧하여臨事紊亂故로歲戊戌에禀於姜公而與
崔鎭厚崔東屹로刊出家禮二易而頒于鄉하여使後學으로知有禮羲之 歸一하고癸亥秋에又手抄
四禮通考하여因跋于卷端하고遺訓後昆하여尤留意校宮하여增新文廟하고力加勸導하여以興起
斯文으로爲己任하니鄉俗이一變歸淳이라嘗以所居齋로扁以渭濱遷翁이라하니盖取諸太公釣渭
之意而公之居가亦適在東海之濱故也라日嘯咏遊釣於其間而風神蕭灑하고岸韻森凉하여飄然有
遺世獨立之意焉이라
처사공(處士公) 행장(行狀)
공의 휘는 빈(鑌)이요 자는 중보(仲寶)요 호는 위빈돈옹(渭濱遯翁)이다. 김씨는 신라
경순왕의 여덟째 아들 삼척군(三陟君) 휘 추(錘)의 아들 휘 위옹(渭翁)에게서 계출(系
出)하였다. 위옹이 삼한벽상공신 상주국 좌승상으로 실직군왕(悉直郡王)에 봉해지니 실
직은 바로 지금의 삼척부(三陟府)인데 자손이 본관으로 삼은 것이다. 휘 자주(自柱)는
대사간이요 휘 해(偕)는 호부상서이니 대대로 높은 벼슬이 이어졌다. 고조 휘 근(瑾)은
부위(副尉)요 증조 휘 하은(夏殷)은 호군(護軍)인데 예(禮)를 배워 행실이 돈독하여 사
림(士林)의 모범이 되었다. 할아버지 휘 성준(聲儁)은 봉화훈도(奉化訓導)요 아버지는
휘 진윤(震尹)이요 어머니 강릉김씨(江陵金氏)는 참의(參議) 대승(大升)의 딸인데 인종
(仁宗) 갑자년 공을 출생하였다.
공은 태어나면서부터 영리하고 골상(骨相)이 비범하여 어려서 어른다움 풍도가 있었
다. 자라서는 배우기를 좋아하여 문예(文藝)가 일찍 성취되고 또 글씨를 잘 썼다. 할
아버지 훈도공이 백씨 좌랑공과 함께 자질들에게 가정교육을 실시하니 공의 종부(從
父) 형제 및 공의 종제 종형들이 무리를 지어 배우니 집안에 문예가 넘치고 효우(孝
友)가 돈독했는데 그중 공이 가장 뛰어났다. 이처럼 좋은 환경에서 가정교훈을 독실이
받아 경사(經史)를 배우고 백가(百家)를 공부하면서 곁눈질을 하지 않으면서 학업에
제5편 선조 행장·갈명기(先祖 行狀·碣銘記) 3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