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0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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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써 이 세상을 초월해 관동(關東) 사대부들이 왕왕 얼굴을 알지 못한 사람들까지
도 칭찬해 마지 했는데 공은 이를 만족하게 여기지 않고 옛사람들처럼 자신을 위하는
위기지학(爲己之學)에 힘쓰면서 과거시험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이는 대개 품성이 고
결해서 그런 것이다.
일상생활에서의 행동이 모두 배운 바를 그대로 실천한 것이요 거기다가 조심하고
확실하게 해서 실패한 일이 전혀 없었다. 집안이 비록 넉넉하지 못했으나 양친 봉양에
힘써 뜻을 맞추어 기쁘게 해 드리고 좌우에서 모시어 한 번도 뜻을 거스르는 일이 없
었으며 병환이 나면 정성껏 간호하였으며 돌아가시자 슬픔으로 거상(居喪)하고 경건하
게 제사를 지내면서 한결같이 가례(家禮)를 따랐다. 이처럼 살아서나 돌아가셔서나 유
감이 없게 하고 근검절약으로 집안을 법도 있게 다스리고 자질을 학문으로 가르치면
서 과정(課程)을 엄히 세웠으며 종족들과 화목하게 지내면서 효제(孝悌)를 깨우쳐 주
고 하인들을 너그럽게 부려 매를 때리는 일이 없었으며 친구를 잘 접대해 사이가 벌
어진 일이 없고 특히 덕행(德行)이 뛰어난 사람과 친하게 지내 비록 상대의 신분이 낮
고 어리더라도 공손하게 겸손하게 성신(誠信)으로 대하니 사람들이 모두 복종하고 공
경하였다. 그래서 비록 길들이기 어려운 자라도 두려워하면서 범하지 못하였으며 범한
자가 있더라도 따지지 않고 스스로 반성하게 하니 그 덕 으로 사람을 감화시킨 것이
대부분 이와 같았다.
공이 특히 예서(禮書) 연구에 힘을 써서 모든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예를 잘 알지
못함이 없이 분명하게 밝히니 온 경내의 유식한 선비들 역시 공의 학설을 따르는 자
가 많고 의심난 곳을 물었다. 또 세상 재미에 담백하고 이름이 나는 것을 피해 자신
을 자랑하지 않았으며 매년 과거(科擧) 보는 날이 돌아와도 문득 응시하지 않고 스스
로 자취를 숨기니 사람들이 너무 지나치게 그러는 것을 애석하게 여겼다. 그러면 말하
기를「그렇지 않다.」하고는 아무렇지 않게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는 저 속유(俗儒)들
이 티끌세상 일에 미혹되어 빠져나오지 못한 것을 보면 위태롭게 여겼다. 더욱 자신을
낮추고 책 읽기에 부지런해 심지어 침식을 잊을 정도였다. 이에 설봉(雪峰) 강백년(姜
柏年)공이 강원관찰사로 본군에 왔을 때 맨 먼저 초가집으로 공을 찾아와 말을 나누고
는 크게 기이하게 여기고 데리고 함께 가기를 옛날 구계(臼季)란 사람이 훌륭한 극결
(郤缺)을 만나 데리고 가 조정에 천거한 것처럼 하려고 했으나 공이 쉽게 따라가지 않
을 것을 알고는 즉시 임금께 상소하니 효종(孝宗)께서 예(禮)를 갖추어 초빙하므로 공
과 효자(孝子) 최진후(崔鎭厚)공이 함께 부름에 응하여 입궐하자 임금이 불러 보시고
는 측근에서 보좌해 주기를 바랐으나 공은 황공하여 굳이 사양하고 물러나니 임금께
서 벼슬에 뜻이 없고 산림(山林)에서 살려고 하는 것을 아시고 매우 한스럽게 여기셨
다. 이에 속히 산림으로 돌아가도록 하면서 시(詩)를 하사하였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동쪽 지방에 좋은 땅이 있으니 군자가 사는 곳이라. 지붕 위는 청산이요 문 앞에는
시냇물이네. 어진 사람은 즐거워하고 지혜로운 자는 안다네.」(東有吉地 君子居之 屋
350 三陟金氏 宗史 總覽 修訂增補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