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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헤매이던 참 평화
                        찾았어요. 사랑
                        그렇게 아름답게
                        날 위해 죽으신

                        참 사랑


             이 노래에는 길을 찾는 한 사람의 오랜 방황에 대한 질문이 담겨있습니다. 또한 노래는 인생의 오랜 질문에 대한 답
             이 그분 앞에서 듣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모든 예술의 오래고도 커다란 질문이었던 ‘美란 무엇인가?’에 대
             해서도 이 노래는 답하고 있습니다.

             “찾았어요. 사랑 그렇게 아름답게 날 위해 죽으신 참 사랑”


             모든 예술의 아름다움을 향한 갈망과 질문은 그분의 죽으심 아래 놓여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주 안에서 예술이
             예술답게 다시 기능하는 출발점이지요. 그것은 예술의 질문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대답에서 비롯되는
             기독교 예술의 시작점인 것입니다.

             그 형제가 이것을 이해했더라면 아마도 그 때 그렇게 질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타당하다고 여기
             는 구조 속에서 영향을 받기에 아름다움이란 단지 심미적인 것이라는 통념을 가지게 되지요. 그것을 거슬러 근원적
             인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알고 일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 예술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차드 해리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적인 미와 예술적인 미는 서로 연합한다.”
             “참된 미는 진리의 탐구와 분리 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지속적으로 ‘심미적 아름다움과 숭고한 아름다움의 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진리이신 하
             나님 안에서 창조의 美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는 입장에서 기술을 생각하고 연마해야합니다.
             또한 우리의 예술작업은 십자가를 붙잡는 순종적인 일이 되어야 합니다. 내 안의 탁월성을 향한 갈망, 사람들의 인
             정받기를 원하는 향한 갈망을 다스리는 영성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공동체로 돌아오기
             21세기의 우리 그리스도인 예술가들은 더욱 더 공동체적 영성을 뜨겁게 가져야 합니다. 바른 교회론, 그리스도의 몸
             으로의 공동체성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필요한 시점인 것이지요.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남기신 대위임령(마 28:18-
             20)은 이 땅위의 교회의 존재이유를 밝혀줍니다. 이는 교회가 공동체 유지와 예배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지요.
             우리 공동체의 사명은 예배만 아니라 더 크고 넓은 것입니다. 성령강림 이후 제자들이 천하만국에서 온 사람들과 각
             기의 언어로 소통을 이루는 것과 같이 하나의 커뮤니티를 떠나 더 넓은 곳(모든 세계)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삶의 기준이 파편화된 상대주의 시대를 거스르는 유일한 대안 공동체는 바로 교회입니다.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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