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 - 신정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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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동일화된다는 것은 시인과 시적 대상의 동일화입니다. 시적
                 대상은 무수히 많습니다. 또 다른 나일 수도 있고,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일 수도 있고, 자연이나 사물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시
                 인이 진달래꽃이나 철쭉꽃이 되어, 딸을 잃은 아빠나 엄마가 되어,
                 등대나 섬이 되어 시를 지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나와 그의 동일화는 시인의 시적 영역의 확대입니다. 시인이 나
                 의 자리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내가 그가 되고 그가 내가 될 수 있

                 을 때 비로소 자기만의 제한된 시적 영역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
                 문입니다. 창작의 영토를 확대할 수 있다는 함의입니다. 소설가가

                 자신의 경험과 사유라는 제한된 범주에서만 소설을 쓴다면, 그의
                 소설 영역은 매우 협소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시인

                 이 자신의 경험과 사유만으로 시를 짓는다면, 그의 시 영역은 매우
                 제한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시도 언어 예술이라는 점에서 창작
                 의 허구성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시는 소설처럼 허구의

                 이야기를 엮어가는 것이 아니라 허구의 감성을 함축하여 짓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서정시는 순간적인 장르입니다. 산문은 축적의 원리를 따르지만
                 시는 압축의 원리를 따릅니다. 탑을 쌓아가듯이 쓰는 것이 산문이

                 라면, 다 사용한 캔을 프레스로 압축한 것이 시입니다 (31쪽). 시간의
                 길이와 시행의 길이는 같이 가지 않습니다. 백 년이나 천 년을 한

                 단어로 축약할 수 있고 아주 순간적인 부분을 수십 행으로도 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축적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압축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압축은 더 이상 줄여지지
                 않는 길이를 전제로 합니다(36쪽). 이런 면에서 보면 시는 매우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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