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 - 신정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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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나무라면, 바위가 웅크린 짐승이라면 세상이 달라져 보입니다.
없는 것이 있는 것이라면, 내가 너라면 우리가 인식하는 사유체계
가 일시에 무너지며 다른 상상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시에서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듣게 되는데 그것도
그 원리를 따지고 보면 이 ‘거꾸로 생각해보기’에서 비롯되고 있습
니다(112).
시적 대상에 대한 접근방법과 표현의 효율성은 통상적인 관념을
버리는 데서 온다고 합니다. 주객의 전도, 생각을 바꾸면 시가 보인
다(118쪽)고 합니다. 시적 표현은 새로운 시어로 그린 신선한 그림입
니다. 시어는 감성과 상상이 들어간 언어인데, 상투적인 뻔한 시어
가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올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SNS나 우
후죽순으로 생겨난 문예지에 실린 시, 심지어 수상작이라는 시를
살펴보면, 회의감과 실망감이 교차할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어울
리지 않은 감정의 구정물들이 미사여구와 마구 뒤섞여 비말처럼 난
무했던 시절이 있었나 싶습니다. 시인이 독자보다 많다는 이 시대
시인의 자화상은 천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천박하기에 천시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그런 자화상을 만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반칙과 술수가 하도 뿌리가 깊어 일
상처럼 무디어지고, 오히려 융통성이나 능력으로까지 미화되고 있
다 하더라도, 시문학조차 이런 시류에 편승하고 있는듯 하여 씁쓸
할 뿐입니다. 신선한 감정과 상상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세상, 그것
이 시의 나라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시는 시가詩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각 시대의 주
요 장르, 이를테면 고대가요나 신라의 향가, 고려의 속요, 조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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