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6 - 신정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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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긴다면…차라리 레오 나르도 디 카프리오의 얼굴을 떠올리며 바
쁜 걸음으로 외면하리라.
요사이 우리나라는 지자체가 앞 다퉈 시민공원, 휴식처 등을 조
성하였다. 길을 걷는 도중에 운동기구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남
녀노소 누구나 가림막 없이 노상에서 산에서, 혹은 강가에서 체력
관리를 할 수 있다. 대부분 평일의 낮 시간을 메꾸는 얼굴은 별다른
표정 없이, 집에서 눈치 보다 나온 듯한 은퇴 실버들이다. 한때 이
나라의 산업역군, 성실한 가장이었을 분들이다. 누군가의 눈을 피
하며 빈곤한 근육을 열심히 돌려대는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삼삼오오 힘을 받는 얼굴은 단연 여성이다. 그녀들은 대오를 이
루었다는 자신감과 함께 누르고 눌렸던 열기를 뱉어내기에 바쁘다.
듣거나 말거나 큰소리로, 한바탕 웃음으로 주변을 압도한다. 남편
수발과 자식 교육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저 강물에 풀어내듯이 말이
다. 굳이 발산해야지만 일시적으로 위안을 받는 듯이. 젊은 날의 아
쉬움과 후회가 밀물처럼 다가와 부딪치는 파고를 감당할 수 없다는
듯이.
정오의 태양은 이제 정점을 향해 뜨겁게 달궈질 것이다. 사람들
의 발걸음도 분주해지고 열심히 살아내는 하루의 여정도 제 색깔을
선명히 드러내리라. 둔탁한 여러 개의 기둥을 철근으로 마감해 구
르는 지하철 3호선은 오렌지색이다. 저 열차는 또 얼마나 많은 얼
굴들이 타고 내리고 환승하며 자신만의 여정을 진행할까. 살아낸다
는 것은 한 끼 밥을 먹는 것과 다름없음을 알기까지. 수없이 전철을
타고 내리며 갈 길을 재촉했을 내 곁의 낯익은 얼굴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이렇게 시작되는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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