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5 - 신정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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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듯 스쳐 지나치는 옆얼굴과 드문드문 같은 곳을 바라보는 뒷
                 모습에서 지난밤의 불면을 공유하는 느낌이랄까.

                   영화가 끝나고 터벅터벅 걸었다.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오늘은 어
                 느 역에서 내릴까 잠시 머뭇거렸다. 옥수라는 이름이 와 닿는다. 구
                 슬처럼 맑은 손이라는 뜻일까. 강이 내려다보이고 경의․중앙선으

                 로 연결되는 걸로 봐서 서울과 교외를 나누는 경계 지점에 있나 보
                 다. 역사를 빠져나오니 왼쪽으로 ‘미타사, 한강공원’ 방향이라는 팻

                 말이 눈에 들어왔다. 육교처럼 생긴 난간을 내려오니 삼삼오오 가
                 게가 몰려 있었다. 역사 아래쪽 공간에는 여러 대의 자동차가 주차

                 돼있었고 적치물 비슷한 것들로 빽빽하였다. 그 앞쪽의 인도 변에
                 는 어젯밤 불빛을 밝혔던 포장마차의 늙수레함이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한 잔 술에 비틀거리며 총총히 집으로 향했을 중년
                 남자의 축 쳐진 어깨가 눈앞 가득 들어왔다. 애인의 손을 꼭 잡은
                 청춘의 얼굴이 그려지기도 했다. 혹은 나처럼 혼자 와서 국수 한

                 그릇을 비우고 소주 한잔을 들이키는 희미끄레한, 지우고 싶은 얼
                 굴도 보였다.

                   뒤를 돌아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를 유치원이나 초등학
                 교에 보내고 한가한 오전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한 젊은 엄마들의

                 얼굴이 싱그럽다. 육아라는 짐은 져보지 않은 사람은 감당할 수 없
                 을 것이다. 누가 오전의 차 한 잔을 마시며 여유를 즐기는 그녀들에

                 게 맘 충이라고 할 수 있을까? 좀 더 아래쪽으로 한강공원을 향해
                 토끼 굴처럼 생긴 공간을 들어가니 영화의 한 장면처럼 뭔가 음침
                 하고 칙칙한 기운이 감돌았다. 낯선 사내가 다가와 말을 붙인다면...

                 레 옹처럼 생긴 근육질 남자가 내 곁으로 밀착하며 수컷의 쉰내를



                                                              영화 감상 수필 |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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