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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냅니다. 온밤 정다웁던 호수의 ‘아침은 햇
살 가지에 걸터앉아 녹는다’ 는 동면 중인 동막골의 서경을 ‘누렁이
꼬리치던 밤 흥겨웁게 노닐고’라며 재치 있는 시어를 끌어와 정적
인 이미지를 은은한 동적 이미지로 전환시켜 자칫 침울해질 수 있
는 시향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이제 시향의 역동성은 거
침이 없습니다. 이 시인은 4연에서 ‘힘차게 돌고 돌던 물방아 물그
림자/새 맞이 윷 놀이판 장정들 목소리는/귓가의 환청이 되어 불꽃
으로 피우길’하며 노래합니다. 긴 동면에서 깨어나는 동막골, 호수
의 이미지는 인고의 시련을 견뎌내고 부활하는 생명 또는 삶의 기
상과 희망의 장면으로 이동합니다. 이 시인은 조급하지 않으면서
집을 짓는 목수처럼 한 줄 한 줄 이미지를 만들어 갑니다.
이 시인은 「능소화」에서도 그리움과 이별의 정한을 담담하게 그
려냅니다. 이별의 슬픔과 그리움을 격한 감정의 분출로 해소하기보
다는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가시는 길에 꽃이라도 뿌려주는 승화된
정한의 이미지는 어느 민족도 그려낼 수 없는 우리의 독특한 시향
입니다. 이 시인은 ‘애달피 구중궁궐을 넘겨보던 뒷모습(1연 종장)’을
‘먼 산에 찾아 든 인연 꽃으로나 답할까(2연 종장)’라고 합니다. 속 깊
은 그리움이 더욱 애절하고 진하게 피어납니다. 이 시인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한 줄의 이미지를 얻는 것은 위대한 사상 체계를 얻는
것보다 중요하다(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는 말이 떠오릅니다. 우리의
전통적 정서의 율조가 현대 감각의 시어와 어울려 아릅답게 펼쳐져
서 세계시민으로부터 사랑받고, 나아가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되기를 소망하는 것은 모든 시조 시인의 한마음일 것입니다. 이 시
인의 동참을 기대하며 발전과 대성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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