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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КОРЕЙСКИЕ НАРОДНЫЕ ВЕСТИ 겨레일보 2016. 10.17(월) NO.3545
■ 겨레일보 특별기획-한민족의 역사와 고대 러시아 ▶ 3부/ 환국과 고대문명 <북극기원론>
고대사탐구가 과거를 향한 '공상과학소설'을 쓰는 것인가 아니면 과거의 역사무대를 새로운 차원에서 넓히는 것인가?
최근 일고 잉는 러시아의 고대사 연구바람은 역사젓 고문서 발견들과 더불어
역사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고 잉다. 특히 그동안 해독하기 어려운 고문서 잒체가 러시아어로 풀려 고대사 연구의
신기원을 만들어 놓고 잉다. 이에 따르면 러시아 역사기록 연대는 60만년 젖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실젯 사용된 연호는 올해로 7천524년에 이르고 잉다. 더욱이 대한민국의 단기보다 3천년이나 앞서는 이 연호는
곳곳에 비문과 역사젓 기록으로 현잲까지 도처에 남아 잉다. 겨레일보는 <한국언론진흥잲단>의 후원으로
최근까지 알려진 이러한 고대 러시아의 발굴 성과들을 소개한다. <편집잒 주>
<겨레일보=박종권 기자 www.koreans.ru>
러시아 역사의 시작 키예프공화국 862년.
정설로 알려진 러시아의 역사는 천년을
조금 넘는다.
그러나 러시아가 대한민국에서 공식 연
호로 쓰는 단기 4349년을 무려 3천년이나
앞서는 러시아만의 공식 연호를 썼다는
기록과 유물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어 놀
▲ 흑해지역 1792년에 발견된 <트무타라칸스키> 비석. 창세 6579년 서기 1068년 둘다
젓혀잉다. 창세 6579년은 그대로 쓰여잉고 서기 1068년은 예수탄생 후라고 설명이 되어 라움을 안겨주고 있다.
잉어 창세표현이 더 공식젓으로 쓰여졤음을 반증하고 잉다. 내용은 중앙사원 <카르초바> <별의 사원에서 세계창조>이라 불리는
와 타만과의 거리(약 24키로미터)를 측량한 기록. 당시 그 지역에는 10세기말에서 12세기 이 연대기준은 줄여서 <창세>로 올해 서
초까지 트무타라칸스키 공국이 존속했다. 사진/인터넷캡처
기 2016년을 맞아 7524년으로 단기보다
3천 175년을 앞서고 있다.
1792년 발견된 10세기말에서 12세기초까
지 <트무타라칸스키> 공국시기에 세워진
비석에는 <창세> 6579년 서기 1068년으
로 적혀 있다. 흑해연해 중앙사원 <케르
치>와 건너편 타만과의 거리(약 24키로미
터)를 측량하고 그 내용을 적어놓았다.
창세 6579년은 그대로 쓰여있고 서기 106
▲ 러시아 역사상 시베리아 지역 첫 건설 도시 <튜멘시> 기념비 표시 연대가 <창세기> 8년은 예수탄생 후라고 설명이 되어 있어
7093년과 <서기> 1586년으로 둘 다 표시되어 잉다(왼쪽 사진). <창세> 7162년 (서기 <창세> 표현이 더 오래전부터 공식적으로
1654년)에 바이칼호수 서부 인근 <앙가라 마을> 지역에 설립한 코사크민족 요새 기념비. 쓰여졌음을 반증하고 있다.
<창세>로만 젓혀 잉다(오른쪽 사진). 사진/인터넷캡처
러시아역사상 시베리아 지역에 첫번째로
건설된 도시 <튜멘시> 기념비에도 <창세>
7093년과 <서기> 1586년으로 둘 다 표시
되어 있어 우랄 동부에도 광범위하게 <창
세> 연호가 쓰여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바이칼호수 서부 인근 <앙가라 마을> 지
역에 설립된 코사크민족 요새 기념비에는
<창세> 7162년로만 적혀 있어 지역적으로
기독교의 영향을 덜 받은 것으로 나타나
▲ 9세기에 젯잓되었으나 한민족의 고대사 기록 <환단고기>처럼 우여곡젚 끝에 최근에야 고 있다.
세상에 드러난 고대 슬라브민족 문서기록 <벨리소바야 크니가>(사진 왼쪽). 그 기록문잒와 또 1900년에 세워진 한 묘비에도 <창세>
현대 러시아어와의 상관표. 산스크리트 모양으로 되어 잉는 고대 문잒들이 러시아문잒와 바 7408년만 쓰여져 있어 20세기초까지도 러
로 치환되고 잉다(사진 오른쪽). 사진/인터넷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