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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РЕЙСКИЕ НАРОДНЫЕ ВЕСТИ 겨레일보 2019. 10.02(수) NO.4258
원인을 설명하고 있다. 으로부터 압록강 주변 800킬로미터까지 20년
"일본의 개항으로 중국과 인도처럼 일본도 간 원하는 용도로 사용할 권한까지 얻는다.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되느냐의 기로에 있었 특히 '조용한 군화발'로 러시아는 러일전쟁
다. 그러나 <메이지유신>은 국가를 강하게 만 발발 1년전까지 조선땅에 영국과 일본이 눈
들었으며 근대화로 나가도록 이끌었다. 일본 치못채게 비밀리에군사건물까지짓기시작한다.
의 발전속에는 동양과 서양의 축척된 경험과 해상뿐 아니라 육상에서도 조만간 시베리아
전통 그리고 성과물들이 성공적으로 융합되 횡단철도는 완성되어 러시아군은 곧 밀어닥
어 있다. 다만 경제의 군국주의화는 일본을 칠 것으로 예상됐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일
위험한 침략의 원천으로 변모시켜 놓았다." 본은 일본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미국 대리인
북한에서 1975년에 발행된 <일본군국주의의 인 제이컵 시프로부터 전비의 40퍼센트에 이
조선침략사>에는 바로 이 메이지유신의 성공 르는 공식지원과 상당한 비공식 금융지원을
과 그 과정에서 소외된 사무라이 무사집단의 받은 상태에서 철저한 대내외적 준비끝에 결
관심을 돌리고자 나온 '정한론'이 아시아침 국 1904년 일본은 기습공격을 감행한다.
략의 시작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은 "일본이 구미침략자들의 강도적 략
탈에서 입은 희생의 대가를 조선을 략탈하는
데서 보상하려는데 있었다."라고 기록하면서
다음과 같은 요시다 쇼인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로씨야와 미국과 강화조약을 맺은 이 ▲ 포츠머스 강화조약(1905년). 왼쪽에서
상 결코 그를 파기하여 신용을 잃을 것이 아 부터 러시아 재무 장관 비테, 로젠 주일
니라 규범을 엄격히 지켜 그들과의 신의를 공사,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 일
두텁게 할 것이다. 그 사이에 국력을 길러 빼 본 전권 외상 고무라, 다카히라 코고로 주
미공사. 사진은 겨레일보가 소장하고 있는
앗기 쉬운 조선, 만주, 중국을 종속시킬 것이 1905년 8월 14일 모스크바에서 발행된
며 교역을 통하여 로씨야에게 빼앗긴 손실을 신문 1면. 조약 1조는 ‘조선에서 지배
조선과 만주땅을 빼앗는것으로 보상할 것이 우월권은 일본에 있다.’라는 내용이다.
다.<요시다 쇼잉전집>1편 122페지".
그러나 이러한 일본의 정책에 매번 걸림돌 은 당시 세계 역사상 가장 평화스러운 조
이 되는 것은 러시아였다. 러시아 주도의 삼 약이라고 지지를 받았고 이 주선건으로 인
국간섭으로 청일전쟁으로 얻은 요동반도를 해 루즈벨트 대통령은 그 다음해인 1906년
일본에게 뺴앗아 청에게 돌려주고 이어 러시 노벨평화상을 받는다. 일본은 1905년 11월
아는 상시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뤼순항을 17일 조선과 을사늑약을 체결 외교권을 박
조차해 진지를 구축한다. 또 러시아는 시베 ▲ <모스코브스키 리스트> 신문 삽화. 러일 탈당한다. 사실상 조선은 나라를 빼앗긴
전쟁 당시의 해군들의 전쟁모습이 그려져
리아횡단 철도를 놓으면서 극동으로 영토확 있다. 이 장면은 러시아측에서 기뢰를 설치 것. 포츠머스조약으로 인해 보호국으로 전
장을 계속해 나가고 있었다. 1902년에는 조선 하고 관찰하는 모습. 락한 대한제국은 역사속으로 결국사라졌다.
러시아제국 역시 러일전쟁 당시인 1905년
이에 관해 러시아측 자료를 연구했던 박종 1월 빵을 요구하는 민간인 평화 시위대를
효 교수는 러일전쟁 백주년을 맞아 2004년 국 학살하는 피의 일요일사건이 발생해 몰락
내 시사 월간잡지에 러일전쟁의 서막을 연 의 길을 걷는다. 결국 러시아에는 황제가
제물포해전에 대해 이렇게 글을 썼다. 사라진 노동자 농민을 대표가 권력을 잡는
"첫 교전이 있었던 8일 밤 제물포로 상륙한 레닌의 소비에트사회주의 혁명이 발생하게
3천여명의 일본군은 아무런 저항 없이 서울 된다. ***
에 입성한다. 결국 이 사건은 조선이 일본에
주권을 빼앗기는 마지막 분수령이 된다"
그는 고종황제가 러시아 파블로프 공사에게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 전한 말도 적고 있다.
"짐은 이미 일본군의 포로상태에 있으며 모
든 권력을 빼앗겼다. 곧 상황이 변해 러시아
▲ 뤼순항의 러시아군 수비모습 삽화. 러시 가 승리하리라고 확신한다. 앞으로 대한제국
아는 뤼순항에 막강한 진지를 구축하고 계 은 러시아군에 적극적인 협조를 할것이다.”
속해서 러일전쟁 발발 1년전까지 비밀리에 그러나 고종의 이러한 바램과는 달리 0차
조선땅에 군사건물까지 지었다. 곧 황인종
속국 조선을 얻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세계대전이라 할수 있는 러일전쟁은 일본의
일본은 기습공격으로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승리로 끝을 맺는다. 다만 서로간 여력이 남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으면서도 결국 뤼순 아있지 않아 전쟁을 지속할 수 없어 1905년 ▲ '피의 일요일' 사건을 풍자하는 삽화.
항을 함락했고 이 날이 일본 육군의 창건일 러일전쟁 이후 미국에서 맺은 러일간 포츠머 러일전쟁중 민간인 시위대 학살로 니콜라
이 된다. 발틱함대 승전일은 일본 해군의 스 강화조약을 맺는다. 이 2세는 '피의 황제'라는 별칭을 얻었으
창건일이 된다. 러일전쟁을 앞두고 일본뒤 강화조약 1조는 ‘조선에서 지배 우월권은 며 당시 발표한 10월선언문의 손도장은
에 영국과 미국이 뒤를 봐주는 모습을 보여 일본에 있다.’라는 내용. 이로써 일본은 청 피로 얻어진결과임을 풍자적으로 보여주
주고 있다. 자료출처: http://diletant.medi 나라 러시아 미국 영국 당시 모든 강국으로 고있다. '러시아제국의 번영과 몰락'책자에
a/articles/31292278/ 부터 조선지배의 승낙을 얻어냈다. 이 조약 나와있는 사진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