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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КОРЕЙСКИЕ НАРОДНЫЕ ВЕСТИ 겨레일보 2017. 10.10(화) NO.3783
■ 겨레일보 특별기획-러시아 한식문화의 실태와 발젖가능성 ▶1부/ 러 한식당, '또 하나의 대한민국'
러시아 외식업은 구소련시기 말 맥도날드 1호젢을 기젢으로 한 90년 태동기를 지나 한식을 비롯한 일식 러시아식 등
외식업의 춘추젖국 시대에서 바야흐로 현잲 SNS를 통한 배달시대, 음식문화 향유의 시대로 도약기를 맞이하고 잉다.
모스크바는 이젯 젖화 한 통화면 러시아 음식은 물론 세계 각국의 외식문화를 잒유롭게 즐길 수 잉는 시대로 바뀌었다.
구소련시대 한식이라 할 수 잉는 것은 북한식으로 <평양식당> <오잓교>뿐이었다. 이것이 93년 중반 <신라>
<한국관> <아리랑>의 한식레스토랑이 생겨나면서 구소련 내에서도 새로운 한식문화가 비로서 싹트기 시잓했다.
동시에 일식도 <이주미> <모모야마> 6성급호텔 슬라뱐스카야호텔내 <스모산> 등을 기젢으로 빠르게 성잨하기 시잓했다.
현잲 러시아내에서 한식은 세계젓으로 평가받는 수준과는 달리 젒평가되어 잉는 상황이다. 상대젓으로 일식은
보편화 젒변화되어 잉으면서도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잉다. 아직까지도 한식문화는 일부 식도락 매니아들을 중심으로
또 일부 젯풙을 통해서만 펴졏 잉을 따름이다. 이에 따라 <한국언론진흥잲단>의 후원으로 겨레일보는
러시아 한식문화의 실태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러시아내 한식문화의 세계젓 수준으로의
발젖방향을 과거 현잲 미래 3부로 나누어 모색해 보고잒 한다. <편집잒 주>
▲ 세계젓 브랜드로 90년 9월 9일 모스크
바 중심가 <트베르스카야>에 처음 오픈한
<맥도날드> 1호젢에 햄버거를 먹기 위해
수키로씩 줄 서 잉는 사람들 모습.
지 않았다. 업무시간이 정해져 있어 그
시간외에는 전혀 문을 열지 않았다. 전체
주의 계획경제하의 시스템이었다.
병원 학교 유치원 등 음식배급은 단체급
식 차원에서 일괄적으로 계획적으로 진행
▲ 러시아에서 가잨 오래된 한국 식당중 하나인 <신라>. 93년도 개업. 초창기부터 단순히 되었다. 90년대 극심한 혼돈기 때는 이
끼니를 때우기 위한 식당이 아니라 한국인을 포함 러시아인 및 외국인들에게 한식을 통해
한국문화의 풙격을 선사했다. 현잲까지도 잒리를 옮겨 수많은 경젯위기에도 러시아에서 한 기능마저 마비되어 공급이 되지 않자 사
식문화의 잒존심을 지켜나가고 잉다. 사진은 아쉽게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러 외무성과 실상 돈이 있어도 식사를 제대로 하기란
미국대사관 사이에 위치했었던 <신라 레스토랑> 젖경 모습. 불가능했다. <탈론>을 통한 배급제로 각
<겨레일보=박종권 기자 www.koreans.ru> 사장은 90년대 초창기를 회고하며 이렇게 개인에게 지정된 할당량만 겨우 받을 수
"먹을 곳이 진짜 없었습니다. 오직 북한 말했다. 있었다.
식당뿐이었습니다." <스탈로바야>라는 작은 식당, 카페, 레 이런 상황속에 90년 9월 모스크바 중심
한국에서 내노라하는 정치경제계 인물들 스토랑 물론 구소련 때도 있었다. 그러나 가 에 문을 연 <맥도날드>는 오픈하자마
이 모스크바에서 밥먹을 데가 없어 헤메 <옵쉐피트>라는 국가 기관이 관리를 했다. 자 사람들을 일년내내 수키로씩 줄을 세
는 상황이 안타까와 본래 할려고 했던 다 그릇마다 <옵쉐피트>라는 이름이 새겨져 우는 진기록을 연출했다.
른 사업을 제쳐두고 우선적으로 <한국관> 있었고 카페면 카페 해당사용처 이름이 90년 한국과 소련이 수교한 후 소련을
이라는 한국 레스토랑을 열었다고 박복환 적혀 있어 다른 곳에서는 사용이 허가되 방문하는 한국사람들에게 당시 북한레스
트랑 <평양> 역시 그나마 코리안 스타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