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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КОРЕЙСКИЕ НАРОДНЫЕ ВЕСТИ 겨레일보 2017.10.10(화) NO.3783

















         ▲ (좌측 1번째) 한국관 모습. 지금은 문을 닫았다. ▲(가운데 사진) (왼쪽 2번째) 한국관 박복환 사잨. 맨 왼쪽이 사할린 출신 고려인 젨홍
         식 러시아 국회의원. 풉틴대통령과 평양을 방문한 젓이 잉다. 오른쪽으로는 풉틴의 젨치젓 후광 및 방패역할을 한 체르나무르진 총리. ▲
         1997년 고려인 강젯이주 60주년을 맞이해 삼성 엘지 후원으로 개최된 회상의 열차 관련 행사가 한국관에서 열리고 잉다.
         로로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던 <맥도날             색감이 좋고 다이어트용으로 여성에게 인
         드>에 못지않는 '사막의 오아시스'였다.              기를 얻으면서      외식업에 있어 대호황을
         당시 북한 레스토랑은 센터쪽 <평양식당>              누렸다. 그후 <다누키> <플라네트 스시> 등
         과 모스크바 남쪽에 위치한 <오작교>.               많은 일식당이 생기면서 일식은 외식업의
          이른바 '대한민국의 레스토랑'은 93년에             탑을 달렸다.
         이르러서야 <한국관>을 비롯해 비로서 생               그런 가운데 한식당은 90년 중반부터 한
         겨나기 시작했다. 선상 레스토랑으로 모스              식과 일식을 겸비한 유정레스토랑이 생기
         크바 강가에 문을 연 <신라>의 모스크바              고 이후 <아를료녹 호텔>에 한식 레스토랑
         입성기는 그야말로 영화의 한장면.                  이 줄을 이어 오픈하기 시작 2천년도 중반
          93년 4 월 러시아 군인들이 동원되어 바닥           에는 한식당도 20여군데까지 이르렀다.
         이 낮은 모스크바강으로 배를 가능한 한               반면 <한국관>과 <아리랑>은 문을 닫아 현
         잠기게 해서 겨우 선박을 목적지인 <체데              재는 <신라>만이 살아 남았다. <평양식당>
         하>까지 이동시켰다.                         <오작교> 북한식당도 경영상의 이유로 사
          초창기부터 <신라 레스토랑>은 단순히 끼             라지고 현재는 <평양고려>와 <능라도>라는
         니를 때우기 위한 식당이 아니라 한국인을              북한 식당 2곳만이 영업하고 있다.
         포함 러시아 및 외국인들에게 한식을 통해              문화원이 없던 초창기 시절부터 한국식당
         한국문화의 품격을 선사했다. 선상에 이어              들은 한국문화의 전파공간으로 큰 역할을
         시내중심가에서 <코로스톤호텔>에 이르는               했다. <아리랑 식당>의 바둑대회를 비롯
         현재까지도 자리를 옮겼지만 그간 수많은               <한국관>의 고려인 강제이주 기념행사 등
         경제위기에도 러시아에서 한식문화의 자존               크고작은 행사들이 대부분 한식당을 중심
         심을 지켜나가고 있다.                        으로 이루어졌다. 한국인은 물론 러시아인
          무역센터 옆에 93년 개업한 <아리랑> 레스           을 비롯 고려인들은 한식당을 통해 대한민
         토랑(장학정 사장)은 이름에서부터 한민족              국을 느꼈다.
         의 정서를 담는 명칭으로 호응을 얻었다.               2002년도 월드컵 당시에는 모든 식당들에
         더욱이 한국인 주방장이 만드는 제대로 된              서 교민들은 러시아인들과 어우러져 응원
         한식을 제공함으로써 주재원 및 무역관계               전을 펼쳤으며 4강신화를 이룬 기쁨을 한
         자와 사업가들에게 크게 인기를 끌었다.               식당에서 만끽했다.
          <한국관> <신라> <아리랑> 러시아 초기 한           초창기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식당은
                                                                                ▲ 2002년 월드컵 당시 모스크바 한국식당
         식문화는 이들 3개 식당이 주도해 나갔다.             태동과 성장기였다. 이 기간동안 한식당은             들 젖체는 한국을 응원하는 관중석인 동시
          한편 일식은 자국인이 주도한 한식 레스              대사관 이상으로 외교의 현장속에 뿌리내              에 기쁨을 공유하는 잖치의 한마당이었다.
         토랑과는 달리 외국인이 주도했다. 당시               린 '또 하나의 대한민국'으로 구소련땅 러            (맨위 유젨레스토랑. 가운데 현 서울레스토
         한국대사관 앞에 있었던 <이주미>와 외무              시아에 태극기를 휘날린 민간 외교의 첨병             랑. 맨아래 지금은 문을 닫은 모스초이스
         성 앞 <모모야먀> 등은 러시아인이 오픈했             을 톡톡히 했다. ***                      레스토랑.)
         고 인테리어 식자재는 다 한국에서 공수된
         것들이었다.
          <슬라뱐스카야 호텔> 일식당 <스모산>은
         유대계 러시아인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한
         국주방장이 7명이나 일했다. <야키토리야>
         라는 일식 체인점은 러시아인이 창업했다.
         이식당은 창업전 러시아주방장 20명을 데
         리고 초밥크기등 러시아인에 맞는 러시아
         식 일식을만들어내 저변확대를 성공시켰다.
          게다가 일식은 보기에 이쁘고 깔끔하고                ▲ 젯1회 한러 친선바둑대회. 뒷줄 맨왼쪽이           ▲러시아 사람들이 대국실이 된 <아리랑
                                              잨학젨 <아리랑 레스토랑> 사잨.                 레스토랑>에서 진지하게 바둑을두고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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