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9 - 수정230816 이성필성지순례내지192검
P. 159
전라도 159
144 광주제일교회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공원로 56 http://www.first.or.kr
광주제일교회는 1904년 12월 25일 광주 양 교인을 비롯해서 숭일학교, 수피아 여학교,
림동 벨 선교사 주택에서 오웬 선교사 가족 일반 시민 1천여 명이 모여 만세를 불렀다.
과 한국인들이 첫 예배를 드림으로 시작되었
다. 전남 내륙지방 선교의 거점이었던 광주
“광주 지역 최초로 설립된 교회에
제일교회는 그 후 교인이 증가하자 북문 안
뿌리를 둔 역사 깊은 교회로 광주
으로 이동하여 예배를 드렸다. 1909년 4월
근현대 역사와 함께 성장했으며
오웬 선교사는 장흥의 한 시골에서 선교활동
광주 개신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중 갑자기 고열로 쓰러져 급거 광주에 도착
수행해 왔다”
하였으나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의 시신은
양림동 선교사 묘지에 안장됐다. 광주제일교
회는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을 주동했던
관계로 교회를 일제에 내어주고 금동으로 이
동하면서 금정교회라 불렀다. 계속 교인이
증가하자 1922년 북문밖교회 (광주중앙교회) 와
1924년 양림교회로 각각 분립했다. 광주 3·
교회창립100주년 기념비
1운동은 재일유학생 최원순, 정광호 등이 귀
국하여 광주에서 최흥종, 김철 등을 만나 일
본 동경 2· 8독립운동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
고 광주에서 거사 준비에 임하였다. 이들은
금정교회 장로이며 숭일학교 학감인 남궁혁
가정에 모여 인원 동원, 독립선언서, 태극기
등을 분담하여 준비한 후 3월 10일 금정교회
광주의 모교회 광주제일교회 이전비
광주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