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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국제화된 시대에 사는 우리들이 해외에 나가 ‘국룰’을 고수하다 보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신기한 대상이 되거나 심지어는 차별을 받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만 통할 수 있는 ‘국룰’과 관련된 이야기를 접

           하다 보면 다소 우려스러운 것들도 있다.
             요즘 주택 시장에서 가끔 사용하는 용어로 ‘슬세권’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슬
           리퍼’와 ‘세권(勢圈)’의 합성어로, 슬리퍼 같은 편안한 복장으로 생활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주거권역을 말하는 것으로, 백화점이나 영화관이 슬세권에 있다
           면 편하게 슬리퍼를 신고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 이런 시설이 있다는 말이

           다. 얼마전에는 잠옷을 안에 입고 외투를 걸치고 과연 집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벗어날 수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된적도 있다.



             요즘은 강의실에 슬리퍼를 끌고 오거나 앞머리에 헤어롤을 말고 앉아 있는 학
           생들을 종종 보게 된다. 개인의 자유라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 이것은 엄연히 우
           리나라에서만 통하는 ‘국룰’일 수 있다.
             나는 가끔 이탈리아 사람들이 정말로 옷을 잘 입느냐라는 질문을 받는데, 옷
           을 잘 입는다는 것의 관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때와 장소에 맞

           게 옷을 입는다는 면에서 보면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멋진 모습(벨라 피구라bella figura), 즉 자신을 잘 가꾼
           다는 것은 멋있고 좋은 옷과 액세서리를 착용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상황에 맞는

           차림을 하고 맥락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다. 이들은 동네 축구일지라도 유니폼을
           갖추고 축구화를 신어야 제멋이라고 생각하는데, 남들이 다 갖춘 것을 하나라도
           갖추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쪽 팔리는 것(파레 부룻따 피구라fare brutta figura)’
           이어서 온통 신경이 복장에 쏠려 절대로 시합에 열중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다. 운동을 위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가운데 복장을 완벽하게 갖추지 않은 사

           람을 길에서 보기 힘든 것도 같은 이유로 보면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의 눈을 너무 많이 의식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나는 이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의식하고 조심하는 것은 남들
           가운데에서 나를 잘 아는 사람일 뿐, 모르는 남들은 보통 전혀 개의치 않고 행동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남의 눈을 많이 의식한다. 그리고 남


           150 _ 서울고 35회 졸업 40주년 기념 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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