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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수업만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하였던, 따라서 당시 학생의 개성이나 잠
           재력은 지금의 논리대로라면 무시되었던 그래서 전혀 창의적인 수업이나 활동
           을 할 수 없었던 우리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학업에 열중하였고, 우리는 모두 밝

           았다.


             전면 과외 금지, 보충수업 금지 등이 있던 시절에 3학년 수업을 진행하던 건물
           뒤편에 위치한, 방치되어 활용이 거의 없던 도서관을 2학년 때 김영창 교장 선생
           님께 방과 후에는 자율 학습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친구들과 함께 부탁하

           여 개방하였다.


             처음에 소수의 2학년 3반 학생 위주로 시작하였던 방과 후 자율 학습 공간이

           시간이 지날수록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학생 수가 증가하였다. 3학년이 된 시점
           에는 도서관의 모든 공간이 꽉 찰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도서관 개방 시간도
           애초에는 저녁 8시까지 하던 것을 학생들의 성화와 요구를 들어주신 교장 선생
           님께서 저녁 10시까지로 연장하여 주셨다.


             이에 보답하려는 학생들 노력의 결과인지 15개 반, 각 반 60명에 달하는 총
           900여 명에 가까운 졸업생 중 상당수가 요즘 흔히 말하는 ‘스카이’ 그리고 ‘인서
           울’의 유력한 대학에 진학하여 학교의 명예를 더 높일 수 있었다. 입학 당시 치러

           진 신입생의 학력 시험 결과를 보시고‘서울대에 100명 정도는 진학하겠네!’라고
           하시던 문영한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졸업 당시와 그다음 해에 35회 동기생들은 사실 80여 명이 넘는 수가 서울대
           를 진학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우리 동기생들은 80년대는 대학생으로 우리

           나라 민주화라는 격동의 시대 변환 과정을 열심히 살았고, 아직도 사회의 곳곳에
           서 지도자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요즘 젊은이들의 시쳇
           말로 ‘가슴이 웅장’해진다.



             서울고 배움의 동산을 떠난 후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는 여러 가지 난항을 겪었
           다. 입시에 정시, 수시 그리고 수시에도 다양한 입시전형이 도입되었다. 어느 것


           146 _ 서울고 35회 졸업 40주년 기념 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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