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5 - 2023서울고 기념문집fox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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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근처에서 하차하여 새문안교회 앞을 지나 학교로 향하
던 등굣길의 어느 날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총을 든 군인들이 가득 찬 군용트럭
이 서대문 방향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지금의 새문안로를 줄지어 급하게 달려가
고 있었다. 무섭기도 하고 가슴 한편으로는 궁금증으로 설레기도 하였다. 이른바
쿠데타에 따른 군부 집권에 항거하는 시민이 벌인 민주주의 데모를 진압하기 위
한 것이었다고 저녁에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다.
집으로 가는 길은 더더욱 어려웠다. 서울역 광장에는 구름같이 모여든 군중들
로 인해 교통이 거의 차단되다시피 하였는데 내가 탄 83번 버스는 겨우겨우 그
혼잡함을 뚫고 남산 순환도로를 따라 집으로 향하였다.
그런 군사정부의 위엄 탓이었을까? 내가 입학할 당시 교장 선생님은 제11대
문영한 교장 선생님이었는데, 졸업할 때까지 이창갑 교장 선생님(제12대), 장기
성 교장 선생님(제13대)을 거쳐 김영창 교장 선생님(제14대)까지 짧은 3년의
고등학생 시절에 무려 네 분의 교장 선생님을 모시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일제의 잔재라고 할 수 있는 딱딱한 검은색의 동복과 국방색 혹은 쑥색으로,
풀을 먹여 다림질한 하얀 카라를 단 하복은 거추장스럽고 불편하기는 하였어도
서울고의 상징으로 생각하고 자랑스럽게 착용하고 다닐 수 있었다. 당연히 길거
리에 나서면 거의 모든 사람이 내가 자랑스러운 서울고등학교의 학생임을 알아
볼 수 있기 때문에 언행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계엄 정부에 의해 과외는 전면적으로 금지되었고 대학 입시 관련 예비고
사 후의 본고사는 폐지된 채, 학력고사로 대치되었다. 나는 소위 학력고사 제1세
대인 셈인데, 고등학교 2학년 1학기까지는 본고사가 부활할지도 모른다는 막연
한 생각으로 본고사 위주의 공부를 하였다. 시간이 지나도 본 고사는 부활하지
않았고 본격적으로 학력고사 준비를 2학년 여름방학부터 시작하였다. 엄격한 교
칙과 현재의 기준에서 보면 자율이 박탈된 교실과 교육환경에서도 우리는 매우
열심히 공부하였다.
145 _ 4060 우리들의 3色5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