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 - 람원50년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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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의 절반은 회관 내에서 다른 기술을 배우며 일하고, 나머지 절반은 구로공단의 봉제
공장으로 출퇴근하며 거기서 기술을 익혔는데, 대부분의 원생들은 육체적으로 매우 고
단한 생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일 아침, 저녁예배와 수요예배는 물론, 매일 새벽 기
도회에 참석하였고, 시시때때로 철야 기도회로 모여 기도에 힘쓰는 가운데 믿음이 날로
성장해갔다.
<교남교회> 설립 후 국병두 전도사님의 첫 사례비는 3만원이었는데 교회의 재정이
넉넉지 않아 그 중 절반을 다시 교회에 헌금하였고, 이 사례비 절반을 헌금하는 생활은
나중에 목사 위임을 받고 목회를 하는 중에도 계속되었다. 당시 교인이던 교남회관 원
생들이 봉제 공장에서 일하고 받은 월급이 한달에 7천원~8천원이었는데 그 어려운 형
편에도 열심히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드리며 열심히 신앙 생활을 했다. 6개월 뒤 국전도
사님은 당시 교사로 재직 중이던 사모님께 교직을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오도록 해 두
아들과 어머니까지 다섯 가족이 함께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생활비를
어떻게 감당하나 걱정을 하였지만, 교회의 재정이 부족하지 않았고, 성도들은 전도사님
가정을 위해 쌀과 반찬을 가져다 드리면서 그것으로 넉넉하진 않지만 생활을 해 나갈
수 있었다.
1973년 연말에 외부 교인으로는 처음으로 국병훈 집사가 등록하였고, 김금순 집사가
<교남회관> 사감으로 취임하면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74년에는 국병훈 집사의 인도
로 임병도 집사와 전웅부 집사가 등록을 했고, 손갑주 집사도 자진 등록하는 등 외부 교
인들의 수가 차차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마장동 교회 교인이던 박연순 집사도 화곡동으
로 이사를 오면서 교남교회로 출석하게 되었고, 박말순 집사도 교회 개척 초기부터 함
께하며 교회의 성장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봉사했다.
1974년 1월에는 교남교회 주일학교를 개설하고 1월 20일 36명의 학생들과 첫 개교
예배를 드렸으며, 같은 해 2월부터 첫 구역 예배가 시작되었다. 또한 6월에는 임병도
집사를 중심으로 오늘날의 청년부인 ‘청년면려회’가 조직되어 학생들과 젊은 청년들이
따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1부. 하나님의 길, 람원의 길_람원교회 50년 이야기 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