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 - 오산문화 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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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VOL. 66  osan culture











              공서린 선생께서 서재를 세우고
              은행나무를 심고 그 은행나무
              에 북을 달아 놓고 문하제자들
              에게 학문을 독려했던 곳으로

              1871년 고종8년 대원군에 의해
              서원 철폐령을 내려 훼철(毁撤)
              되었다가 1926년 윤학영 선생

              을 비롯한 지방 유림들의 노력
              으로 다시 중건되었다. 윤학영
              선생께서는 유학만이 땅에 떨
              어진 윤리도덕을 일깨울 수 있
              다고 생각하여 동양의 성인 공

              자의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오산화성궐리사 중수필역 기념-윤학영, 왼쪽에서 4번째 (1955가을)
              받들고 실천하는데 노력하셨으
              며 그 일환으로 화성궐리사의 중건에 힘을 기울이셨다.



              1948년 오산에 최초의 중학 교육이 시작되었으나 6.25사변으로 불타버린 학교를 다시 세
              우기 위해 동분서주 지역유지들의 모금운동으로 교실 6칸으로 상량(上樑)을 하게 이르렀
              다. 그는 일찍이 선견지명이 있었다. 그래서 삼미의숙(三美義塾)을 젊은 날 세우지 않았던
              가, 낙후되고 가난한 농촌을 살리는 길은 교육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당시는 너

              무나 가난한 사람이 많아서 수원이나 서울로 학생을 진학시키기는 아주 힘들었다. 그래서
              이 고장에 반듯한 중학교가 설립되어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다.

              1950년 해방 후 처음 실시하는 주민의 직접선거로 초대 면장에 취임하게 된다. 6.25사변으
              로 허물어진 시가지와 민심을 수습하고 폐허와 잿더미 위에서 오산지역을 재건하는데 총
              력을 경주 하여 많은 사람의 칭송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1957년에는 일제강점 및 6.25
              전쟁으로 소실된 세마대(洗馬臺)를 다시 복원하여 후손들에게 선인들의 위대한 업적을 일
              깨워 주어야한다며, 선생께서는 물신양면으로 세마대 복원사업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평소 자녀들에게 조상을 잘 모시라고 말씀을 했고, 또 몸소 실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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