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 - 오산문화 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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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VOL. 66 osan culture
지주를 설득하여 금융조합(金
融組合)에서 돈을 융자하게 하
고 소작농들에게 서 마지기 자기
농사를 짓게 하였다. 가을 추수
에 수확한 쌀을 창고에 보관하
여 저축절약(貯蓄節約)하는 검
소한 생활을 하게하여 닷새마다
배급을 주고 남는 쌀로 땅값을
치르게 하였고, 마을에서 농한기
에 노름을 하지 못하게 하고 가
마니 짜기를 독려하는 등 마을
을 낙원으로 가꾸어 놓았다. 노
력하고 근면성실하면 누구나 다
삼미제1저수답신축기-윤학영, 왼쪽에서 4번째
잘살 수 있다는 것을 선생께서
마을사람에게 전수한 것이다. 천수답으로 하늘에만 의존하던 농사를 위하여 삼미 제1. 2저수지를 축조하여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가뭄에 대비하는 농업을 이룩하셨다.
1936년에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급학교 진학을 못하는 청소년을 위하여 농업실습학교를 만들어 과학적
인 영농방법을 배우게 하여 우수한 농업인이 되게 하여 영농지도자로 활동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이와 같이 윤학영 선생의 좋은 마을 만들기 일환인 농촌계몽운동의 활동을 매일신보 1937년5월20일자 기
사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寒村이樂土로 更生裡面의 美談 私財喜捨自作農創定 文盲退治에獻身
食糧充實과 旱害防止에專力 水原 尹學榮氏의 熱誠
수원군 성호면 외삼미리 농촌진흥회장 윤학영씨는 자가 갱생을 圖함과 共히 부락전체 발전향상에 주력하야
각종지도계획을 定함에 있어서 선결문제가 부락민 생활안정에 있다는 것을 절실히 자각하고 삼미공동경영
조합을 조직하고 자작농가될 방책을 講究중이든바 부근 소재 토지 20町步를 年賦償還制로 하여 자기의 소
유 토지를 오산금융조합에 擔保하고 總經費 2萬1千70圓으로써 공동 購入하야 48人에게 평균분배시켜 상
호근농한 결과 56戶1里 전체가 자작농으로 更生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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