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 - 오산문화 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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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VOL. 66  osan culture









               삼은  윤학영               尹學榮    선생의 좋은 마을 만들기
                     三隱



               글 _ 윤의영 Ⅰ 오산화성궐리사 유사








              대한민국 지자체가 열정을 갖고
              추진하고 있는 좋은 마을 만들
              기가 1920년대에 오산의 한 지
              역이었던 성호면 외삼미리(현 오

              산시 외삼미동)에서 윤학영 선
              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해평윤씨(海平尹氏)한성공파(漢
              城公派) 통정대부(通政大夫) 사

              헌부감찰(司憲府監察) 군자감정
              (軍資監正)을 지내신 11世 윤응
              상(尹應祥) 조부(祖父)로 시작되
              어 현(現) 28세(世) 종손(宗孫)

              홍주(洪柱)에 이르기까지 오산
                                             삼미의숙수업기념-윤학영,  앞줄 왼쪽에서 3번째(1938.3)
              삼미마을에서 500여년을 이어
              온 가문의 한 분이신 삼은(三隱) 윤학영(尹學榮.1898-1966)선생을 얘기하고자 한다.



              선생께서는 추오급인(推吾及人)이라는 즉 나로 하여금 미루어 남을 생각게 하라는 가훈
              (家訓)처럼 그의 피와 땀이 구석구석 맺힌 삼미 마을은 자작농(自作農)으로 흉년에도 보리
              고개를 모르고 지냈으며, 마을 한가운데는 문맹퇴치(文盲退治)를 위하여 1923년 4월 4일
              교장(校長) 윤학영(尹學榮) 교사(敎舍)12칸 운동장129평 교사(敎師)2명 학생85명으로 삼미

              의숙(三美義塾)을 개교하여 95년의 역사(歷史)와 전통(傳統)으로 현재 삼미초등학교로 이
              어오고 있다.
              그 당시 손바닥만한 소작을 가꾸는 삼미마을 농민으로서는 신학문을 배우러 10리 나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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