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 - 오산문화 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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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VOL. 67 osan culture
면, 태장면, 안용면 등에서도 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성호면 오산독립만세운동의 주모자로 몰려 체
오산리에서는 관공서와 민가 13채가 파괴되고, 일본병이 출동 포된 독립운동가들은 대부분이 농업
하여 2명이 붙잡혀 가고 일본병의 발포로 약간 명의 부상이 에 종사한 농민들이며 거의 대부분이
있었다. 오후 3시쯤 오산장에 모여 있던 300여 명의 군중들 성호면에 살던 주민들이었다.
을 유진홍(兪鎭弘)과 안낙순(安樂順) 등이 태극기를 배포하면 이들의 만세운동에 대해 일제의 경성
서 태극기를 휘두르며 선두에 서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이 지방법원은 징역 6월에서 1년 8월까지
끌었다. 5시경에는 이들은 오산장 우시장에서 출발하여 성호 형을 선고했다.
면사무소와 오산경찰주재소 부근에서 적극적으로 만세운동 이성구(李成九, 수원군 일형면, 25세,
을 펼쳤다. 당시 현장에 있던 오산주재소의 순사 오오키(大木 징역 1년 8월.1990년 대한민국건국훈
喜市)가 해산을 요구하자, 시위 군중은 이에 불응하고 만세소 장 애족장 수훈), 이규선(李圭璇, 진위
리를 더욱 높였다. 유진홍, 안낙순 등 3명의 주동자를 체포하 군 북면, 25세, 징역 1년 8월. 2006년
자 시위 군중들은 석방을 요구하며 기세를 높이자, 이에 기가 대한민국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김경
꺾인 오오키는 체포한 사람들을 석방하였다. 도(金敬道, 성호면 오산리, 34세, 징역
석방에도 불구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는 사람의 수는 더욱 늘 1년 6월. 2013년 대한민국건국훈장 애
어 이성구(李成九), 이규선(李圭璇), 김경도(金敬道), 정규환 족장 수훈), 정규환(鄭奎煥, 성호면 오
(鄭奎煥), 김용준(金用俊), 유진홍(兪鎭弘) 등이 다시 500여 산리, 25세, 징역 1년. 1993년 대한민
명의 군중과 함께 시위대를 해산하려 하는 면장에 대항하여 국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안낙순(安
면사무소로 몰려가 면장 유종열(劉鍾烈, 재임기간1918~1920) 樂淳, 성호면 세교리, 44세, 궐석, 징
에게 “면장은 왜 만세운동에 참여하지 않는가? 만세 시위에 역 6월. 아직 수훈을 받지 못함), 김용
참여하지 않고 있으니 죽여라.” 하며 투석전을 하였다. 준(金用俊, 성호면 금암리, 38세, 궐
이날 저녁 무렵 군중은 더욱 늘어 7~800명에 이르고, 면사무 석, 징역 6월. 아직 수훈을 받지 못함
소를 투석으로 파괴한 다음 다시 우편소로 몰려가 일본 군경 ). 유진홍(兪鎭弘, 성호면 세교리, 34
과의 통신을 두절시키기 위하여 전화기를 부수었다. 일찍부터 세, 궐석,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성호면 내에는 일본인 상인과 이민자들이 들어와 평소에 한국 아직 수훈을 받지 못함), 공칠보(孔七
인들과 감정이 대립하고 있었다. 면민들은 일본인 상점에 돌을 甫, 성호면 궐리, 36세, 태 90. 1995년
던져 건물을 파괴한데 이어 일본인 가옥 11채를 파괴하였다. 대통령표창) 의사들이다.
또한 주재소에 투석을 한 뒤에 오산역으로 몰려가 역을 습격, 이외에도 수원헌병대에서 태형을 받은
파괴하자, 일본 경찰과 보병이 합세하여 발포하였다. 무기에 대 의사들도 있다.
항할 수 없자 해산하게 되었다. 홍순국(洪淳克, 성호면 세교리. 태40),
오산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은 식민지배기구였던 면사무소, 경찰 홍종찬(洪鐘瓚, 성호면 세교리. 태40),
주재소 앞에서의 실력행사를 보여준 것으로서 당연한 우리의 임구연(林九連, 동탄면 금곡리. 태40),
주권을 공표한 것이다. 오산지역에서 야금야금 거주지를 확장 모영철(牟永哲, 동탄 산청리. 태40), 안
하는 일본인들의 지배력을 부인한다는 실력행사였다. 병덕(安秉德, 동탄면 신리. 태40),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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