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 - 오산문화 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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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사 이야기
3·1운동소사 팔달산의 함성 - 성호면 편
글 _ 김운성
* 『3·1운동소사 팔달산의 함성』 - 성호면 편, 편자 김운성, 1981년, 수원 3·1동지회 발행-에서 당시의
상황을 새롭게 살펴볼 수 있는 자료라고 판단되어 옮겨 적는다. 오산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4일부
터 3월 30일까지 당시 오산에서 진행되었고, 3월 29일에는 대규모로 오산장 중 우시장에서 발발하여
오산역에 이르는 곳까지 옮겨가며 진행되었다. 3월 30일에는 독산성 세마대에서 거사하였다. 이해를 돕
기 위해 실제와 다른 부분, 보완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주석을 달았다. 현 표준 어법에 맞지 않더라도
의미 전달이 되는 경우에는 원본 그대로 옮긴다. - 오산학연구소 상임위원 남경식
1. 우시장을 메운 백의군중 이들은 모두가 세전(世傳)의 재산으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으니 구차하게
1919년 3월29일은 성호면1)의 장날이었다. 총독부 치하의 월급장이 따위는 안해
시내 변두리인 우시장에는 이성구, 김경도, 이규선, 정규환, 도 되었다. 집안이 넉넉하니 일인들의
유진홍, 안낙순, 김용준, 김국준, 공칠보 등 9명이 모였다. 눈치를 보며 살 필요도 없었다. 말하자
이들은 소를 팔고 사는 장사꾼이 아니다. 그렇다고 쇠살주(중 면 시골의 협객들이었다. 이 운동의 주
개인)는 더욱 아니다. 3·1운동 거사를 위해 몇 차례 만났던 동 모자 이성구와 안낙순은 18세의 나이
지들로서, 오늘 장날을 이용하여 봉기하기 위해 왜경들의 관 차이가 있지만 형님 동생으로 호형호
심 밖에 있는 우시장으로 모인 것이다. 제 하면서 지내왔다. 저녁 술상에서 서
이들 9명은 평소에 왜경들이 보기에는 부정한 무리들이요, 우 로가 세상 돌아가는 꼴에 한탄도 해보
리 사회로서는 애국 사상을 지닌 청장년들이다. 고, 어느 때는 호연지기로 상합하는 오
1) 현 오산시. 행정 지명 변천은 수원군 성호면 > 수원군 오산면 > 화성군 오산면 > 화성군 오산읍 > 오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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