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 - 오산문화 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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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VOL. 67 osan culture
성호면(오산)부근을 총독부가 쳐놓은 덧에 제일착으로 걸린 “그럼 좋습니다. 내 조카놈을 영감도
셈이다. 잘 아시니 부탁 편지를 쓰시면 더 좋
어느 날 측량기를 맨 일인 측량수와 한인 보조원이 성호(오 아 할 겁니다. 영감은 글 쓸 줄 모르니
산)근교의 농가를 찾아들었다. 그때만 해도 측량수까지 칼을 내가 대필하지요. 그 대신 여기 도장을
차고 다니는 세상이니 일인만 나타나면 무슨 변고가 있으려니 찍으시면 진짜가 됩니다. 도장이 없으
하여 슬금슬금 피할 때이다. 일인은 어느 촌로를 붙잡고 “영감 면 지장도 좋구요.”
이상, 저 앞의 논은 댁에 것입니까?” 이래서 열 두마지기 땅이 삽시간에 넘
“아니요, 나랏님 것이 랍지요.” 어갔다. 문가는 이런 식으로 농민들을
“무시기 나랏님이라면 당신네 임금이꺼요.” 울려 수백여마지기의 나라 땅을 울궈
“본시는 6대조부터 섬기는 묘토인데 소인이 어렸을 적 아버지 낸 장본인이다. 어차피 총독부로 귀속
가 관가에 끌려가서 육모방망이 몇 대를 얻어맞고 그 원님에 되는 마당에 새치기를 했으니 어떠랴
게 받쳤으니 나랏님 것이지요. 그렇지만 쭉 우리가 부쳐 먹고 하여 유둘유둘하게 굴었지만, 경자유
있지요.” 전인데도 그는 동족의 피를 빨았으니
“흐음 그러면 이것은 국가소유다(총독부 귀속).” 그 후부터 원성은 10년 20년이 가도
땅에서 나서 땅만 파먹고 사는 소박한 농민에게 제일먼저 마 가시지 않았다.
수가 꽂친 곳이다. 이런 사례로 수원, 정남, 오산일대의 기름 데라우찌 총독은 이런 식으로 톡톡히
진 땅이 하루에도 수백정보씩 총독부 소유로 귀속됐다. 장사 재미를 보아 한국 땅덩어리의 4분지1
치고는 굉장히 수지맞는 장사이다. 을 저의 것으로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통에 재미를 톡톡히 본 한인 부일배도 있었다. 그 어질고 착한 농민들, 땅의 귀속은 까
표본이 당시의 성호면장 문가이다. 하루는 같은 동네에 사는 맣게 모른 채 그해도 그리고 다음해도
촌로를 성호(오산)으로 끌어냈다. 술을 잔뜩 먹여놓고 농사를 지을 줄 모든 것을 까맣게 잊
“영감이 부치는 앞 논 열두마지기는 궁원토지요.” 는다.
“그런데 왜 그러지요?” 위와 같은 사례는 한국천지 어디에서
“어차피 그럴 바에야 토지조사원이 나거거던 문아무개가 부치 나 벌어졌으니 책으로 엮어도 몇 권은
라고 한 것이라고 얼버무려두십시오.” 넉넉히 될 것이다. 그런데 1915년 봄에
“예끼 이사람! 매는 누가 맞고. 직고안하면 형틀로 다룬다던 이 흉모는 터지고 말았다.
데.” 봄이라곤 하지만 음력으로 따지면 섣
“영감도 딱하십니다. 내 조카 놈이 총독부 일등통역이 아닙니 달 그믐께다. 이집 저집서 떡매소리가
까. 어제께도 김첨지 손주와 박서방 맏이놈을 취직 부탁했는 요란하다. 설빔의 마지막 손질을 하느
데 척척이드군요. 하니 염려는 놓으십시오.” 라 아낙의 바눌 꾄 손이 바쁘게 움직
“그럼 그러이, 내 손주 녀석도 서울 어디에든 부쳐주게나.” 인다. 제수를 푸짐하게 사든 이첨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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