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 - 오산문화 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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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VOL. 67  osan culture







              란 거금도 타냈다. 이 돈으로 고리대금도 하고 소작료도 호되                     다. 당장 같아서는 불쑥 들어가 모든
              게 메겨 알 먹고 꿩 먹는 격이니 거드름이 대단했다.                         기물을 때려 부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성호면(오산) 일원은 이 사례가 허다했다. 오늘모인 군중들                      참는다.

              이 면장을 잡자는 것은 동족의 피를 빨았으니 불구대천의 원                      만약에 습격할 그 순간 주재소가 나와
              수요, 일인들은 교묘한 수단으로 우리 조상전래의 땅을 수탈                      서 외마디 소리라도 저쪽에서 들으면
              했으니 착취의 원흉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일인 거류민들은                     만사는 끝장이다. 뿐만 아니라 면장집
              6~7년 전에 비렁뱅이꼴로 건너온 것들이 총독부의 후광을 업                     과 일인집 습격거사도 낮과 같이 허사

              고 벼락부자가 되어 거드름을 피우니 무척 아니꼽고 미웠다.                      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10년 동안 쌓이고 쌓인 이 원한을 이 저녁에 훨훨 풀어보자는                    이윽고 교환원은 상대방을 연결했는
              시위였다.                                                 지 수화기를 놓고 담배를 꺼내문다.
              땅거미가 질 무렵 우시장에는 집신갑반을 한 젊은이들이 꾸역                      “형님 쳐들어갑시다.”

              꾸역 모여들었다. 두루마기를 입은 군중은 자락을 여며서 허                      옆에 있던 성급한 친구가 귀엣말로 재
              리에 졸라맺다. 평화스런 시위가 아닌 여차직 하면 싸움도 벌                     촉한다.
              여야하니 동작이 기민해야 했다.                                     “쉬…… 가만 저 전화가 끝나야 한다.”
              그날 저녁 성호 시가지는 횃불을 든 시위 군중으로 대낮같이                      연장자 한사람이 상대방의 등을 누르

              밝았다. 고요한 어둠속에 메아리 친 함성은 인근 십여 리까지                     고 제지한다. 지금 쳐들어가면 아까보
              우람하게 퍼졌다. 횃불 또한 활활 타서 충천했다.                           다 위험부담이 더 크다. 통화중에 뚝
              주재소 앞을 지나가도 만류하는 왜경은 없었다. 야음에 제지                      끊어지거나, 만약에 끊어지지 않고 와
              를 했다가는 불행한 사태를 예상한 모양이다. 집총자세로 주                      장창 때려 부수는 소리가 만약이라도

              재소를 맴돌 뿐이다. 이 무렵 시위대와는 별도로 행동대를 편                     주재소에 알려지면 만사는 끝장이다.
              성한 3개조의 그림자가 제각기 맡은 우체국, 면장집, 일인거류                    짧은 몇 분간의 대화이지만 그 시간은
              민들 집으로 부산히 달려갔다. 제일먼저 달려간 한 떼는 우체                     왜 그렇게 긴지 모른다. 일각이 여삼추
              국으로 향한 습격조이다. 통신 시설을 마비시켜야 왜경들이                       란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일께다.

              고립될 터이니 당연하다.                                         담배 한 개비가 다 탈 무렵 수화기를
              문 사이로 조심스럽게 안을 훔쳐보니 남자 직원 한사람이 수                      들은 교환원은 “통화가 끝났습니까.”하
              화기와 씨름을 하고 있다. 지금같이 다이알을 돌려서 양쪽을                      더니 코드를 뺀다. 그리고 기지개를 길
              연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계속 상대방을 불러서 나오면 신청한                      게 펴며 아가리가 찢어지도록 하품을

              쪽과 연결시켜야 할 때이다.                                       한다. “저것봐라! 참 느슨한 놈이다. 염
              이때 불쑥 들어가려다가 멈추고 교환원의 고래고래 지르는 호                      라대왕이 나꿔챌 채비인데.”
              출 소리에 긴장을 한다.                                         교환원이 느슨한 것도 아니오. 친절한
              “주재소, 주재소.”하고 몇 번을 연거푸 부르는 통에 숨을 죽인                   것도 아니다. 그 연대의 전화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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