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오산문화 67호
P. 31

2019  VOL. 67  osan culture







              문면장에게는 오래전에 권번기생을 사귄바가 있었다. 사귄 게                      “면장이 도망치고 없다.”
              아니라 일금 30원을 괘척하여 머리를 올려주었다. 당시 돈푼                     “면장이 줄행랑을 쳤다.”
              께나 있는 상류사회에서는 이 짓을 덕적으로 삼아왔다. 그 대                     제각기 나름대로 외친다. 이 소리에 군

              신 기생에게는 다른 남자에게 몸을 허락하지 못하는 철칙이                       중은 더 흥분을 한다.
              있었다. 권번기생 옥향이는 문면장 덕분으로 화류계의 성인이                      “집을 부수자!”
              된 것이다. 그 후 옥향이는 3년 새에 불사이부의 법도를 지켜                    누군가의 입에서 나오기가 무섭게 일
              왔다.                                                   제히 집안으로 뛰어든다.

              처음에는 옥향이의 젊은 여체에 단맛이 났으나, 일녀 기누요                      가구, 집기 등이 모조리 박살이 난다.
              를 알고부터는 만나는 회수가 뜸해지고 이제는 마지못해 들르                      면장 아내에게 손찌검이 안간 게 다행
              는 정도였다.                                               이고 방화를 면한 게 또한 다행이다.
              옥향이를 뜸하게 만나는 이유가 또 한 가지 있었다. 옥향이는                     쥐 한 마리 잡으려다 독만 몇 십 개 깬
              시가에 능했다. 선비들과 어울릴 때는 신바람이 나서 해박한                      꼴이 되었다. 그 독은 이집의 큰 쥐가

              한학으로 술술 화답을 했다. 어깨넘어로 배운 문면장의 한문                      야금야금 이웃 것을 훔쳐서 장만한 것
              실력은 먼발치도 못 따라갔다. 그러니 자격지심이 생겼고 기누                     이기에 깨어져도 아까운 게 없었다. 이
              요를 만나고 부터는 마음조차 멀어졌다.                                 무렵 면장 집 피습의 급보는 즉시 주재

              3·1운동 거사직후, 어쩌다 들러도 옥향의 태도는 싸늘했다. 자                   소로 알려졌다.
              기가 친일면장이니 경원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 옥향이에게                      한편 기세가 등등한 야간시위는 더 번
              가기에는 발걸음이 내키지 않았다.                                    져만 갔다. 우체국의 전화도 끊기고,
              “기누요에게로 가자! 폭 묻히면 어느 때 솟아날 구멍이 생기겠                    일인집이 습격을 당하고 면장집이 박
              지….”                                                  살나고, 주재소는 고립무원의 상태가

                                                                    됐다. 수원본서에 전령을 띄웠지만 왕
              5.고립무원에 빠진 주재소                                        복80리길이니 구원대가 도착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려야 했다.

              문면장이 집에 숨어있으면서 겁을 먹고 나오지 않는 줄 알고                      궁여지책으로 오산정거장을 지키고 있
              군중들은 연신 고함을 지른다. 누구도 면장이 몸을 피하고 있                     는 철도경호대를 불러댔다. 이윽고 호
              는 것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전적인 그들이 주재소에 집결하니 30
              얼마 후 젊은이들은 면장 집 현관으로 다가간다. 이집엔 총도                     명은 넘었다. 이들은 전열을 가다듬고

              없고 긴 칼도 없으니 안심이다. 면장과 맡 붙은들 몇 주먹감                     곧 주재소 바깥에 대고 실탄을 난사했
              이니 등등한 기세로 문을 박찼다. 그런데 그의 집안은 예상과                     다. 어두우니 추격도 어려우려니와 지
              달랐다. 그의 아내만 아이들과 이불을 뒤집어쓰고 떨고 있었                      리에 밝지 못하여 바깥에 대고 겨냥
              다. 젊은이들은 바깥으로 뛰어나오며                                   없는 무차별 총질을 했다.



                                                                                                 29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