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오산문화 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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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사 이야기






           많은 도장을 어디서 새긴담, 또 돈도 아깝다. 손도장이면 어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일본의 대륙진
           쩌랴! 그 많은 손도장을 누구더러 누르랄까. 지문이 똑같으면                     출 계략엔 꼭 여자와 술이 필요불가결
           어떠랴. 시골 영감들이 몰라서 꾹꾹 눌렀다고 우겨대면 그만                      한 부품으로 등장했다. 한잔 술에 호

           이다.                                                   연지기를 돕게 할 그들의 배세물을 받
           1천장이 문제가 아니라 5천장 5만장이라도 가능하다.                         는 그릇으로서 여자들을 차출시킨 것
           그 다음엔 이쪽도 생각이 있다. 사람은 고삐를 잡으면 말을 탈                    이 침략의 이면사이다.
           욕심이 생기는 법, 문면장은 이런 일로 공노를 내세워 군수 감                    요정 야마도의 접대부 기누요와는 요

           투라도 얻어 쓸 야심으로 가득 찼다. 생각이 이쯤 비약하자                      즘 사귄 사이가 아니었다. 그가 면장
           수원에 닿을 무렵에는 역에 내린 자기 자신이 금새 군수가 되                     으로 취임한 2년전, 일인들의 환대를
           어 도임하는 환상까지 했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는 물불을                      받느라 이 요정에 처음 발을 들여 놓
           가리지 않는 그의 야욕과 꿈이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제                     았다. 그때 첫눈이 맞은 것이 기누요
           아무리 심장에 털이 난 문면장이라고 한들 청천벽력과 같은                       였다. 그날은 그가 주빈이다. 일인들의

           뉴스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융숭한 대접에 포로가 됐다. 그보다도
           “어쩐다! 참 낭패로다. 사방이 꽉 막혔으니…”넋두리 섞인 한숨                   옆에 찰싹 달라붙은 일녀 기누요의 요
           을 몰아쉰다.                                               염한 눈매, 무엇에든 ‘하이하이’를 연

           창졸지간에 갈 곳이 없어졌으니 어디로 간단 말인가? 성호면                      발하는 그 순종, 백옥 같은 살결, 문
           의 일인들은 배신당했다는 눈총으로 외면할 것이 뻔하고, 성                      가는 금새 마음도 몸도 사로 잡혔다.
           난 군중들에게 붙잡히면 다리 하나쯤은 틀림없이 동강이가                        일인들이 성호면에 살면서 문면장을
           날판이니 성호면이 지척이지만 갈수가 없었다.                              구어삼기 위한 미인계였지만 그는 마
           어디든지 은신을 하자. 그렇다! 기누에의 집으로 가자. 거기만                    냥 기쁘기만 했다. 그날 밤, 기누요를

           가면 만사를 잊으리라. 처세술은 날 쥐 박쥐에게 배워야한단                      품에 안았을 때 오직 도원경의 황홀을
           다. 지금은 대낮이니 날면 안된다. 열흘이건 한 달이건 꼭꼭                     맛보았다.
           숨어있자.                                                 40고개를 훨씬 넘도록 여체의 오묘한

           수원역전에 야마도라는 왜식요정이 있었다. 한국요정은 그날                       이치를 일찍이 맛보지 못한 그였다. 이
           그날 기생을 권번에서 물러다가 손님방에 들게 했지만 일인요                      일이 있은 후, 며칠 동안 꿈에도 기누
           정은 접대하는 아가씨가 붙박이로 그곳에서 숙식을 하고 있었                      요를 잊지 못해 잠꼬대를 해서 부인과
           다. 사내들에게는 참으로 편리했다. 얼큰히 취하면 침실로 같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는 소문까지 파
           이 들어가 뒹굴면 됐다. 일인들은 어느 땅에 진출하거나 꼭 여                    다했다.

           랑(창녀)을 딸려 보냈다. 바늘 가는 곳에 실이 따르듯 일인이                    그래도 문면장은 기누요와 터놓고 지
           가는 곳에 그림자 같이 따라붙는 것이 요정이었다.                           내면서 요정출입이 잦았다. 그녀도 싫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고 술과 계집이 있는 곳에서 역사는                       지 않게 대하니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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