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오산문화 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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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사 이야기
거나하게 취하여 집으로 돌아온다. 모두가 1년에 한 번씩 어김 그들이 떠난 다음에야 이첨지는
없이 돌아오는 그날을 맞이하기 위해 부산하게 움직이고 낭만 “아이쿠 당했구나, 우리 다섯 입에 거
스럽다. 미줄이 웬말이냐!”
이첨지가 사랑채에 들 그 무렵 총독부관리가 허스름한 일본 땅을 치고 통곡을 했지만 손등만 아팠
인 하나를 달고 들어와 마당에서 서성댄다. 이첨지는 술기분 다.
이 확 가셨다. 웬 일일꼬. 이집의 가문이 생긴 이래 처음 맞는 요 한달 새 오산장터에 나간 이첨지는
괴상한 손님이다. 찾아올 이유가 없는 손님이 찾아오면 누구 반신반의할 풍문을 들었었다. 2년 전
나 미심쩍어한다. 그 보다도 먼발치에는 일본인이 나타나도 슬 에 조사해간 땅은 전부 몰수하여 일본
슬 피하던 터에 마주 맞게 되니 이 가문으로는 실로 천지개벽 서 저들 농민들을 새로 들여와 농사
이래의 큰일이다. 를 짓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
고서도 이첨지는 2년 전에 토지조사에
3. 먼저 통신망을 끊어라! 응하기는 했지만 조상대대로 지어먹은
땅을 어떠랴 남의 일로 알았던 일이 직
“여기 이상노 집인데 찾아다녔군.” 접 내일이 되고 보니 기가 막혔다. 이
“댁은 뉘신데 이렇게 저녁 무렵에 찾아오셨오.” 해 세모 무렵 수원 지방에는 이렇게
총독부관리는 자기 집이나 된다는 듯이 문지방에 궁둥이를 제물이 된 농가가 부지기수였다.
대고 앉아 서두부터 안하무인 격이다. 이첨지는 가슴의 방망 설날을 앞둔 부산함도, 새해의 새 복
이질을 감추느라 애를 먹으면서도 다음 말에 정신을 바짝 차 을 바라는 부풀음도 사라지고 우리의
린다. 농가에는 슬픔과 액운만이 찾아들었
“이상노 저기 냇갈둑 논은 2년 전에 나랏님께로 밝혀졌지요.” 던 것이다.
“예, 그렇소이다만은 왜 그러시지요.” 단 1년 동안에 우선 들 좋고 물 좋은
“나랏님과 총독은 마찬가지이니 이제는 총독부 땅이 되었오. 곳을 골라서 총독부 땅을 만든 데라
올해부터는 우리 일본사람이 나와서 농사를 지을 터이니 내 우찌총독은 동양척식회사와 흥정하여
놓으시오. 여기 이 사람이 여기 와서 농사를 짓게 됐오. 그동 소유권을 그리고 넘기고, 개척민이라
안 소작료도 않바치고 배불리 잘 자셨오.” 하여 일인 농가를 정착시켰던 것이다.
참으로 청천병력이다. 이첨지는 앞이 캄캄해져서 말문이 막혔 그런데 그 일인 농가들이 가관이었다.
다. 처음에는 농사를 짓는 듯하더니 3~4
일인은 이첨지가 멍하니 바라다보기만하자 납득이 된 것으로 년 후에는 거의가 도시로 빠져나와 장
간주했는지 총총히 사라진다. 그 뒤를 새 농사꾼이란 또 한사 사를 시작하고 경작을 한국인에게 맡
람의 일본인이 짤막한 키를 이리 틀고 저리 틀며 따라간다. 큰 기어 비싼 소작료를 물게 했다. 이들에
원숭이 뒤를 작은 원숭이가 쨉쨉대며 따라붙는 그 꼴이다. 게는 한국에 올 때 집집마다 3백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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