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 - 오산문화 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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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VOL. 67  osan culture

































              1926년 오산공립보통학교 맹휴사건이 일어난 성호초등학교. 사진은 2019년 제100주년 3·1절 기념행사 장면. 1919년도 오산공립보통학교는
              현재 성산초등학교 자리에 있었으나, 1952년 현재 이곳으로 이전해왔다. 사진 유영희

              일제의 무단침탈과 억압은 민족의 자존적 존립에 매우 큰 타                      1926년

              격을 주었으며, 광복한 지금도 남북 분단이란 고착적인 민족                      오산공립농업보습학교 맹휴사건
              의 대립의 부작용을 겪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3·1절을 맞이                    오산공립농업보습학교 1, 2학년 학생
              하는 자세에는 이러한 우리의 반성과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를                      이 1926년 5월 24일부터 일본인 교장
              되새는 계기로 삼는 기념일이 되어야 하겠다.                              배척과 학교 승격을 요구하며 동맹휴

                                                                    학을 단행한 사건으로 5월 26일에는 2
              1926년                                                 학년생들이 교장에 대한 불평과 승격
              오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초등학교)맹휴사건                                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한다. 이 일
                                                                    로 학생 3명이 주모자라고 무기정학을

              오산공립보통학교 6학년 71명이 1926년 5월 3일 학생들에게                   시켜 학부모들을 분개하게 했다. 오산
              심하게 모욕적 언사를 쓰고, 구타 등으로 학대하는 담임교사                      공립농업보습학교 후원회가 학부모들
              후루카와의 처벌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다나카교장에게 제출하                       을 소집하여 회의를 개최하고, 오산공
              고 동맹휴학을 단행하였다. 이후 학생들은 한필호 후원회장의                      립농업보통학교생들은 맹휴를 결정함

              주선으로 등교했다가 중재 결렬로 다시 수업을 거부하고 귀가                      과 동시에 교장을 배척하고 졸업 후 자
              했다. 이렇게 해결이 어렵게 되자 학교 당국이 학생들에게 더                     격 문제, 무자격교사를 축출할 것과
              는 후루카와 교사의 수업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약속을 얻어                      교사 신축 등 3개 안을 제출하며 학무
              내고 등교한 단체행동으로 5월 7일 수업에 복귀한 사건이다.                     국에도 진정을 넣은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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