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4 - 오산문화 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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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단상








































           고려시대부터 수원에 속했던 오산은 1941년에는 수원군 오산면, 1949년에는 화성군 오산면이 되었다가
           1989년 화성에서 분리돼 오산시로 승격했다. 오산장은 예로부터 명성이 높았다. 실학자 이중환이 1753년에

           펴낸 <택리지>에는 시장이 3일과 8일 열렸다고 기록됐는데, 그 오일장의 전통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26년 기록을 보아도 경기 남부에서 오산장은 수원장 다음으로 컸고, 싸전과 우시장 등이 유명했다.
           현재 오산양조가 있는 곳은 오산장이 열리는 초입에 위치해 있다. 장날이면 오산천 인근부터 상인들이 다
           양한 물품들을 판매하며 남쪽으로는 오색시장까지 이어지는 볼거리가 많은 장터이다. 그러나 장터가 열리

           지 않는 날들에는 역사 깊은 옛 장터의 명성이 무색해 지고, 쓸쓸하기 그지없는 거리였다. 이에 오산시에
           서는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오산장터 공간을 재정비하게 되었는데, 그에 마을사람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양조장을 열게 되었다. 오산장터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의 기억 속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
           고, 그 아래 평상에서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장터을 오가는 이들에게 쉼터가 되어주던 양조장의 모습

           이 선명하다. 그 기억을 더듬어 오산지역에 양조장을 복원하게 된 것이다.


           그 복원의 중심엔 고향마을을 잘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고, 또한 지역사회에 다양한 방면으로
           기여하고자 하는 뜻이 서 있다. 전통주를 제조해서 큰 수익을 내는 것보다 공동체의 가치가 모든 일의 기

           준이 되어 마을기업으로 자리잡고 양조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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