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 - 오산문화 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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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VOL. 59  osan culture



                으나, <오산비행장>은 박흥식이 사비를 들여 직                   오산시민들은 오산에 존재치 않는 오산비행장의
                접 건설한 비행장으로 공사 완료와 동시에 조선                    ‘오산’ 명칭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에 대한 불편함
                총독에게 헌납하고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 평택시민들은 평택시 권내에 없는 ‘오산’의 명
                                                             칭이 평택오산비행장에 남아 있는 것에 대한 불

                『오산시사』에 <오산비행장>이 보이는 것은 광복                   편함을 못내 아쉬워한다.
                이 된 1945년에 일제강점기 때 경비행기 활주로
                로 사용하던 오산천둔치(지금의 시민회관과 공설                    현재 『평택시사』에서는 오산비행장의 ‘오산’ 명칭
                운동장 자리)에서 조국광복 경축 제1회 전국축구                   이 오산시에서 밝히는 오산시의 오산비행장이 평

                대회를 개최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해방 직후 미                  택시의 오산비행장으로 이전되었다는 유래하고
                군은 김포비행장을 사용하다가 <오산비행장>도                     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음은 『평택
                사용하게 되었는데, 1950년 6.25 한국전쟁까지                 시사』에서 밝히는 송탄오산비행장의 역사 연표이
                발발하자 재개수하며 미군의 비행장 역할을 톡톡                    다. 필자는 이 입장을 지켜주고 싶다.

                히 하였다. 이후 1952년 평택시 송탄지역에 새로
                건설하여 갔고 명칭은 그대로 사용되었다.
                                                             평택시의 송탄 Osan Air Base 역사
                <오산비행장>은 현재< K-55오산에어베이스>
                                                             1952년 12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무렵,미공군은 길이
                로 불리며 평택시 송탄지역에 존재한다. 송탄의
                                                             2,740m의 활주로를 송탄에 건설했으며 기지를 K-55로 명
                <K-55에어베이스>는 1952년경에 평택군 송탄
                                                             명했다.
                면 신장리와 서탄면 적봉리 일대에 건설되었다.
                                                             1956년 9월, 기지에 오산 에어베이스(Osan Air Base)라는
                이곳에는 본래 신장리, 원적봉, 야리, 신야리, 장
                                                             정식 명칭이 붙여졌다.
                등리 긴등과 같은 자연마을이 있었는데, 미군기                    1971년 11월 1일, 일본 오키나와의 나하AB에 주둔하던 51비
                지가 건설되면서 이곳에 살던 주민들은 원적봉                     행단이 오산AB로 이동해 주둔을 시작했다.
                마을과 긴등마을은 마을 뒤편의 산등성이로 집단                    1993년 10월 1일, 51비행단이 제51전투비행단으로 개편되
                이주하였고, 야리, 신야리같은 마을 주민들은 신                   었으며, 이 부대는 현재 군산AB의 제5전투비행단과 함께 7

                장동 구장터, 제역동이나 서탄면 황구지리, 금각                   공군의 주력이다.
                2리로 분산 이주하였다.
                                                                  참고문헌
                현재도 오산이라는 비행장 이름을 미국이 고수하
                                                             •  오산시사편찬위원회, 『오산시사 3권』 2009.
                는 것은 오산시나 평택시의 시민들의 생각과는
                                                             •  김복동, 『옛수원 새수원』, 이화문화출판사, 2011.
                다르게 존속하고 있는데, 이유는 전 세계의 미국
                                                               •  남경식, 『오산역사문화』, 우리동네사람들, 2013.
                군사지도를 바꾸고 군사행정 문서의 변경에 많은                      •  『깊고심심한 우리동네 읽기』, 평택문화원, 2014.
                돈이 들며, 미군과 미국 사람에게 친근하고 발음                   •  평택시사편찬위원회, 『평택시사 하권』, 2001년.

                하기가 좋아 변경 없이 사용을 고수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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