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 - 오산문화 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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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사이야기
시설이었다고 보면 틀림없다. 카바레도 있었다고 훈련원으로 개수하면서 당시의 객실의 형태와 벽
한다. 평택시 송탄의 오산에어베이스의 미군들이 체는 그대로지만, 동부건설의 자료서가로 변경되
지프차를 타고 와서는 놀다가곤 하였는데, 사병 기도 했고, 대형 댄스홀이었던 자리는 직업훈련
들은 부대 앞에서 놀고, 장교들은 사병과 섞여 함 원의 강의실로 바뀌었다.
께 휴식을 취하기 어려우니, 다시 말하면 한적한
이곳에서 보내도록 한 것이다. 본관은 밋밋한 일자형이 아니라 좌우를 날개처럼
약간 꺾어서 지었다. 그리고 현관은 멋을 내어서
유사장이 유림각호텔을 지을 때는 정부의 고위층 지었고 규모가 작아서 그렇지 일류호텔의 로비를
에서 뒤를 봐준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고 한다. 연상시킨다고 했다. 어느 객실에서든지 유명 휴
그러나 실상은 미군들의 불만도 잠재우고 외화 양지에서처럼 쾌적하게 유명 휴양지처럼 바깥 경
획득도 하자는 이유가 얽혀있었다고 한다. 여기 치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본관 앞뜰에는 원
유림각호텔은 전망이 좋고 예전에는 객실에서 오 형테라스를 만들어 전천후로 작은 파티를 할 수
산천이 훤히 보였다고 한다. 그 당시 이곳은 오산 있도록 해 놓았다.
에서는 변두리에 속한 곳이라 서울에서 유명 연
예인들을 불러오고 접객녀들을 불러다 파티도 대 유림각호텔이 바로 동부건설로 바로 넘어온 것은
단하게 했다는 이야기도 남아있다. 아니라고 한다. 부도가 난 이후 미륭건설에서 미
군호텔을 인수해서 사우디 현장 파견 노동자들을
호텔의 전체 부지는 1만5000평이었고, 반원형 본 교육하는 장소로 썼다. 동부건설로 소유권이 넘
관 건물, 넓은 마당, 부속 건물과 소방도로 건너 어온 것은 1995년이었다고 한다. 동부건설은 처
편까지 모두 호텔 소유였다. 본관은 3층, 객실은 음에는 직업훈련원으로 쓰다가 나중에 그룹 자료
층당 30개 정도씩 있다고 했다. 모두 100여개쯤 를 보관하는 장소로 바꾸었다. 동부건설은 이곳
되었고, 작은 방은 침대 하나 들어갈 정도로 좁 에 아파트를 지으려고 10여 년간 노력해왔다.
은 것도 있고, 10평, 15평등 다양했다고 한다. 일
반 객실도 화장실과 욕실을 갖추고 있었다고 하 현재 다세대 건축물 골조가 올라가기 시작하는
는 마을 어르신들의 취재 이야기도 전하는 것을 유림각호텔 자리는 이제 망각의 기억너머로 사라
보면 어느 기록이 맞는지 헷갈리기는 하다. 물론 져가고 있다. 한때 오산의 풍물이 되었던 유림각
본관 지하나 부속 건물을 공동샤워장으로 사용한 호텔. 오산시민들의 이용과는 거리가 먼, 이 건축
흔적이 남아있기도 했다는 기록도 있다. 애초엔 물의 이미지는, 마치 미군들이 한 번도 주둔한 적
수영장, 테니스코트, 배구장 등의 체육 시설도 갖 이 없던 오산시가 평택시 송탄에 존재하는 오산
추어져 있었다. 당시로서는 최신식으로 지었다고 에어베이스(오산비행장)의 ‘오산’이라는 명칭으로
한다. 3·1빌딩보다 잘 지었다는 이야기도 남아 오산은 미군이 주둔하는 번잡한 군사도시로 이미
있고, 현대식 공조시설을 갖추어 냉난방이 최고 지가 덧씌워진 곳 같은 안타깝고 먹먹한, 도시 이
급이었다고 한다. 동부건설에서 이 시설을 직업 미지와 너무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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