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오산문화 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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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사이야기



            금암동에서 닭을 제수로 올리면                                           가수동의 마을신앙에 대하여는
            서 암수를 올렸다는 점은 금암                                           주로 정진용 어른(2008년 조사
            동의 제의 장소가 당집만이 아                                           당시 82세)께 소상한 설명을 들
            니라 일명 할아버지바위 할머니                                           을 수 있었다. 정진용 어른은 이

            바위로 불리는 금암동 큰말의                                            마을의 토박이로 가수동의 마을
            바위신앙과 관련성도 배제할 수                                           제사를 ‘산제사’라 명명하였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조심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스럽기는 하나 세교동의 최촌말                                           가수리의 당집인 ‘성황당’이 있

            에서 닭을 올리는 것도 경기도                                           는 산은 ‘가심이산’이라 불렀다.
            도당굿과의 관련성을 추정할 수                                           ‘가심이산’은 독산(禿山)에서 함
            있을 것이다.                                                    박산을 넘어 가수리까지 이어지
                                                                       는 산줄기이다. 한편 가심이산

            그리고 양산동의 산제사가 또한                                           에는 장사(壯士)가 나는 기운이
            특이한데 이 곳에서는 오산시에                                           뻗쳐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
            서 유일하게 그리고 여느 시군                                           본인들이 산줄기의 맥을 끊어놔
            의 경우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서 그 후론 장사가 나지 않았다

            점이 발견되었다. 이는 여자를                                           고도 전한다.
            당주로 선정한다는 점이다. 또
            한 소를 올리되 소의 왼쪽 부위                                          당집은 지금의 형태로 짓기 전
            만을 올린다는 점도 매우 귀한                                           에는 터주가리 형태의 것이었

            자료이다. 이는 소를 몰 때에 소                                         다고 하는데, 업가리보다 크게
            의 오른쪽에 채찍을 대기 때문                                           만든 집주저리에 앞 쪽만 터놓
            에 신에게 올리는 부위로 적절                                           고 그 안에 제기를 보관하였었
            하지 못하다는 의식에 기인하고                                           다. 현재 보이는 당집의 현판은
                3)
            있다.                                                        제보자의 사촌형이 쓴 것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인 명칭으로 성황
            가심이산 성황당(城惶堂)                                              당(城隍堂)이라 하지 않고 성황
            산제사(山祭祀)                                                   당(誠惶堂)이라 한 점이 특이하






            3)  정남면 계향리 계산골과 보통리 헌담안의 예가 있으며 이를 필자가 2009년 화성시·화성문화원에서 발간한 『구비전승 및 민속자료
              조사집』7권에서 소개한 바 있다. 한편 세종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하고 오산시에서 발간한 『烏山市의 歷史와 文化遺蹟』에서는 소의
              오른 쪽 부위를 올린다 하였는데 이는 조사과정에서의 착오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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