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오산문화 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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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사이야기



            박영효 별장은 1957년 화재로 소실되어 흔적을                   터에 건축하고 평택시에 있는 미군오산비행장 장
            찾을 수는 없다. 그나마 무, 배추밭으로 존재해오                  성과 장교들의 사교장으로 사용케 하였다고 한
            다가 현재는 유림각호텔부지와 합하여 다세대 주                    다. 그리하여 많은 달러도 벌어들여 국익에 도움
            택을 짓고 있어, 이곳이 한때는 조선사회를 변혁                   이 되었다고 한다. 인간사 새옹지마이다. 늘 자신

            시키려 했던 혁명가 박영효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 선택한 자신의 자리는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
            곳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것도 그                  다. 박영효의 일생을 추적하면서 그의 공과가 오
            의 말년을 보냈던 곳이어서 조선이 망하고 변절                    버랩되며 씁쓸한 마음이 가슴을 짓누른다.
            의 자세를 취했던 그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아

            별로 유쾌한 곳으로 남아있진 않다.                               참고문헌


                                                         •  오산문화원, 「남경식 : 부마 박영효를 찾아서」, 『2002독
            이 박영효 별장을 늘 보았다는 은계동에서 출생
                                                           산성』, 대영, 2002.
            하여 현재까지 그 곳에 살고 계셨다는 인터뷰 당
                                                         •  남경식, 『오산역사문화』, 우리동네사람들, 2013.
            시 64세의 공덕현님(한국전력 근무), 또 한분의
                                                         •  사진, 남경식
            인터뷰에 응해주셨던 66세의 류광모님(해외건설
            협회 근무)은 부친(류대영), 조부(류형석)와 함께                  박영효 별장 터, 2002년
            직접 그 별장 집에서 오랫동안 사셨고, 부친께서                    박영효별장 과수원 터, 한호빌라, 2002

            는 유림각호텔을 박정희대통령의 지시로 별장 뒷                     박영효별장 마구간 터, 황덕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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