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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제4장 언론(言論) · 경제 / 보건
강경구 │ 경기일보 기자 · 환경위생 · 사회복지
제1절 개설 / 사법
오산시 언론사(烏山市 言論史)에 있어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은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1987년 1월 · 치안 · 소방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6월 9일 이한열 최루탄 피격 사건 등으로 분노한 시민이 6월 10일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전국적으로 전개한다. 이에 당시 민주정의당 노태우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직선제로 · 언론
의 개헌 등을 포함한 시국 수습방안을 담은 ‘6·29선언’을 발표한다. 이 6·29선언에 그동안 신문사
설립 등 언론자유를 통제했던 ‘언론 기본법 폐지’가 포함돼 1987년 이후부터 전국적으로 지방신문은
물론, 지역신문들이 잇따라 창간을 한다.
1989년 1월 1일 오산읍에서 시로 승격한 오산시에도 마침내 1991년 11월 4일 ‘오산신문(烏山新聞)’
을 창간하는데, 오산신문은 오산시는 물론 인근 화성지역 최초의 지역신문이다. 오산신문이 창간된
1991년 당시 오산시와 화성군 지역 상황을 살펴보면 오산시가 1989년 1월 1일자로 화성군 오산읍에
서 시로 승격돼 화성군에서 행정구역이 분리된 상태였다. 오산시가 화성군에서 분리되기는 했지만,
화성군청과 군의회가 현재 롯데마트 자리에 있었고, 화성경찰서, 화성교육청, 화성등기소, 화성문화
원, 시민회관, 공설운동장 등 주요 관공서와 관계기관, 농협중앙회를 비롯한 금융기관 등도 모두 오
산시 관내에 있었다. 이처럼 오산은 1970년 6월 10일 수원시에 있던 화성군청이 오산읍으로 신축이
전 한 이후부터 2000년 11월 1일 화성군청이 남양면으로 이전할 때까지 40여 년간 화성군 중심지역
할을 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창간한 오산신문은 창간 초기부터 오산시와 화성군 소식을 지면에 담고 있어 오
산시는 물론 화성군 최초의 지역신문이다. 이후 오산지역에서는 1996년 월간지 ‘우리동네사람들’과
2000년대 들어 ‘오산시민신문’, ‘물향기신문’ 등 주간신문과 ‘오산인터넷뉴스’, ‘오산타임즈’, ‘시사타임’
등 인터넷 매체들이 창간돼 일부는 현재(2019년 12월)까지 다양한 지역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1987년 6·29선언 이후 전국에서 지방신문들이 잇따라 창간됐고 경기·인천 등 수도권에서도 다
수 지방신문이 창간됐다. 경기·인천지역에서는 인천일보(1988년 7월 15일), 기호일보(1988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