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5 - 오산문화총서 3집
P. 165
나고, 온갖 짐승이 말을 하고 인간은 말을 하지 못하던 시절에 천하궁 당칠성이 지하궁에 내려
와 배필을 구하러(‘죄인을 찾으러’로 해석하기도 함) 인물추심을 다닌다. 당칠성이 하루 쉴 곳을
찾다가 매화뜰에 불이 켜진 매화부인의 집을 발견한다. 당칠성은 매화부인과 인연을 맺고, 매화
부인은 여러 가지 꿈을 꾼다. 당칠성은 매화부인의 꿈을 듣고 장차 아들 형제를 낳을 것이라며
큰아들은 선문이, 작은아들은 후문이라 이름을 짓으라 하고 천하궁으로 떠난다. 매화부인이 잉
태해 아이를 낳고 당칠성의 말대로 아이 이름을 선문이와 후문이라 했다. 선문이와 후문이가 성
장해 서당에 들어가 글공부를 하다 친구들에게 ‘아비 없는 자식’ 이라는 놀림을 받고 매화부인에
게 아버지가 누구냐며 졸라 당칠성의 거주지를 알아낸다. 이들 형제는 천하궁으로 아버지를 찾
아간다. 당칠성은 아들 형제를 만나 선문이는 대한국을, 후문이는 소한국을 차지하도록 한다.
이 시절에는 해와 달이 둘이었다. 형제는 해와 달 하나를 철로 만든 활로 쏘아 떨어뜨려 해 하나
는 제석궁에 걸어두고, 달 하나는 명모궁에 걸어두어 오늘날과 같은 세상을 만들었다.”
위의 내용은 ‘시루말’의 일부분이나 ‘창세신화’의 신화소가 포함돼 있는 중요한 단락이다. 이
내용에 나와 있는 ‘창세신화’의 신화소를 살펴보면 천상계의 남자 신(천하궁 당칠성)과 지상계의
여인(매화부인)이 결합해 인간세상의 시조를 출생시킨다는 내용, 즉 천부(天父)와 지모(地母)의
결합으로 국조(國祖)가 탄생한다. 이것으로 보아 단군신화나 주몽신화 등의 국조 출생과정과 같
은 개국신화임을 알 수 있다. 천하궁 당칠성이 아들 형제를 낳고, 이 아들 형제가 천상으로 아버
지를 찾아가 인간세상을 다스리라는 직책을 부여받는 내용도 개국과 함께 인간세상을 차지하는
창세신화의 한 요소다. 또한 ‘창세신화’에서 중요한 일월조정 신화소가 ‘시루말’에 포함되어 있
다. 천지혼돈 상태에서 해와 달이 두 개인 것을 하나로 만드는 일월조정 신화소는 매우 중요한
창세 신화소의 한 요소다. 해와 달의 수효 조절은 농경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이다. 이와 같이 서사무가 ‘시루말’은 고대 농경사회 조상신에 대한 제의를 통해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었던 ‘창세신화’로 볼 수 있다.
② ‘시루말’의 특징과 의미
‘시루말’의 중요한 특징과 의미는 ‘시루말’이 창세신화의 변천 경로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는 것이다. 창세신화 내용을 담고 있는 경기도 서사무가로서 중부 지역이라는 지리적 위
치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북부 지역의 ‘창세가’와 남부 지역인 제주도 ‘천지왕본풀이’의 가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내용면에서 보면 북부지역 ‘창세가’는 미륵과 석가 두 거인신이 등장해
천지를 개벽한다. 오산 ‘시루말’에선 거인신이 천부지모 형태로 바뀐다. 아버지는 하늘신이고 어
오산 12제차 중 ‘시루말’의 창세신화 고찰 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