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9 - 오산문화총서 3집
P. 189
필자가 현장을 조사하던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오산시에 전승되었거나 전승되고 있는 마
을신앙은 모두 20개의 법정동에서 그 존재의 양상을 조사할 수 있었다. 이 가운데 가장동과 누
읍동, 내삼미동, 두곡동, 수청동, 은계동 등 6개의 법정동에서는 산제사와 우물제사가 함께 전
승되었거나 전승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여 이 6개의 마을에서만 우물제사가 존재하였다고 생
각하지는 않는다. 격식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우물이 존재해야 마을이 존재할 수 있었고 마을이
존재하는 한 우물을 공동으로 관리하면서 우물청소가 실시되어야만 하는 것이 공동체적 삶의
형태임을 감안할 때 우물을 마을주민들이 함께 청소하고 나서 술 한 잔을 올리든 소를 잡아서
제물로 올렸든 여하한 형태의 우물제사는 존재하였을 것이라 판단한다. 그 예의 한 곳이 가수동
이었다. 여하튼 우물은 공동체생활을 구성하는 필수불가결의 거점이며 성소였다. 그리고 오산
시에는 명칭에는 다소의 차이를 보이지만 산신제형태의 마을제사는 19개의 법정동에서 그 존재
양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다만 이 가운데 당제사를 공동체신앙의 명칭으로 사용하는 지역이 있
는데 갈곶동과 서동, 원동과 지곶동, 탑동 등 5개의 마을이었다. 지곶동과 탑동은 산제사의 다
른 이름임이 명확하여 보인다. 마을의 뒷산에 당집이 있었고 이 곳에서 제의를 올린 당에서 올
리는 마을제사라는 의미로 당제사라 하였을 것이라 추정된다. 다만 갈곶동과 원동의 당제사는
여느 지역의 산제사와는 차이를 두고 있는 것이 사실로 보인다. 이에 대하여는 오산시 마을신앙
의 전승양상에도 구체적으로 다루기로 한다.
이렇듯 오산시의 전역에서 마을신앙이 존재하였다는 것은 현재 오산시의 50%이상의 면적이
임야와 농경지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만큼 생업인 농사의 풍성한 결실을
꿈꾸는 활동과 그리고 많은 부분 땔감 등을 채취하기 위한 산에서의 활동 등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농사를 통하여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마을주민들의 단합된 공동체 활동이 무엇보다 절
실하고 중요하였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라 판단한다.
일반적으로 마을신앙은 제의의 시기와 명칭, 제의를 주관하는 사람의 구성과 그들의 명칭에
따른 역할, 제수(祭需)의 종류 등이 변별되는 요소들이다. 이 가운데 제의의 시기는 농사를 짓는
지역인가? 어업을 하는 지역인가에 따라 다르게 날을 잡는다. 예로 음력 1월과 칠월, 시월 상달
은 농사를 짓는 지역이며, 음력 2월과 동짓달은 어업을 하는 지역임을 드러낸다. 7월은 우물고
사와 관련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니 오산시의 마을신앙은 음력 1월 이거나 음력 시월상달로
나타난다.
그리고 마을신앙의 명칭은 유교식이냐 무속이냐에 따라 제(祭)나 굿으로 명칭이 붙는다. 무속
의 경우에는 지역에 따라 명칭의 차이를 보인다. 예로 황해도굿은 대동굿, 서울은 부군당, 경기
도는 도당, 전라도는 골멕이당 등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경기도의 유교식제의는 ○○제, ○제사
烏山市 마을신앙의 傳承實態 考察 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