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2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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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삼미동 +
두곡동 + + +
부산동 + + + 가래떡 검은시루 대구포,용떡
벌음동 + + 脯, 炙
서동 + + +
서랑동 + + + 脯
세교동 + 수 + + 崔村
수청동 + + 炙
양산동 + + 통북어
은계동 + + 삼탕, 과일3개씩
원동 + 밀주 + + 神體=돌멩이
지곶동 + + + 香
탑동 + + +
계 18 2 2 10 9 6
먼저 희생(犧牲)은 소를 올리느냐 돼지를 올리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는 지역의 경제
적 능력정도와의 관련이 더욱 밀접하다. 여력이 되면 소를 올리고 여력이 부족하면 소를 올린
2)
다. 그런데 닭을 올리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물론 제의의 규모나 경제적 여건과 무관하지는
않지만 금암동과 세교동 오리골 최촌말에서는 의미의 차이를 보인다. 먼저 금암동은 닭을 올리
되 암탉과 수탉 두 마리를 올렸고, 최촌말의 경우는 수탉만은 올렸다. 이는 명확하게 조사되고
연구되지는 않았지만 신격과의 관련성이 있어 보인다. 세교동의 홍촌말과 원촌말에서는 산제사
라 하였고 최촌말에서는 산신제라 하였던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말하자면 마을의 신격을
산신에 두고 있지만 그 엄격함에서의 차이가 닭을 제수로 올리느냐 올리지 않느냐의 차이로 나
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흰시루를 올리는가? 팥시루를 올리는가?는 신격을 산신이라 하면서 옛법을 잘 계승
하고 있느냐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 결론적으로 산신의 시루는 흰시루이다. 오산시에서
는 9개의 법정동이 흰시루를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6개의 법정동에서는 팥시루를 올리고 있었
다. 이는 마을제사를 산제사라고 하는지 당제사라고 하는지의 명칭적 차이에서도 드러났던 차
2) 다만 나라의 제의와는 다르다. 나라에서는 임금이 직접 참여를 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소와 돼지가 달랐다. 임금이 직접 참여하
는 경우에 희생으로 소를 올렸으며 직접 참여하지 않는 경우에는 돼지를 희생으로 올렸다. 「華城築城時 告由祭硏究」, 김용국.
비교민속학회, 2005
190 김용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