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7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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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없는 깨끗한 집으로 선정한다. 몸이 불편하거나 다친 사람은 조라가 될 수 없다.
떡과 나물 등의 제물은 조라의 부인이 장만하고, 제사에 올리는 술은 하루 전에 누룩과 쌀밥
을 지어 묻어 두었다 걸러서 사용한다. 이것을 식혜라고 한다.
산신제를 지내는 제당에는 조라와 심부름꾼 등 몇 사람의 남성들만 올라가서 지낸다. 제사는
산신제나 우물제사 모두 동일한 순서로 진행된다. 우선 조라가 먼저 술을 한 잔 올리고, 축문을
읽은 후 나머지 2잔은 소임이 각각 1잔씩 올린다. 제사 후에는 마을소지를 한 장 올린다. 제사
후에는 조라의 집으로 제물을 옮겨 음복 겸 고기를 나눠간다. 4)
3.【갈곶동】
당할아버지를 주 신격으로 하고 있다. 그러다가 당할아버지가 계시니 당연히 할머니가 계시는
것 아니냐 하여 당할아버지와 당할머니를 신격으로 모시게 되었다. 그리고 마을에는 강씨가 제일
먼저 터를 열고 들어왔음으로 강좌상이라는 분도 신격으로 모시고 있다. 그리고 강좌상이 이 마
을에 들어올 때 함께 따라 들어왔던 마부도 모시고 잔을 올린다. 그렇게 미루어 볼 때 마을에서
모시는 당할아버지 역시 강씨의 조상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 여론이라고 한다. 정면 제단 위의
벽에는 ‘城隍之神位 康座上神位’ 이라고 씌여진 신위(神位)가 각각 1개씩 걸려 있다.
5.【궐동】
궐동은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윗마을은 궁터, 대호밭이라고 하고, 아랫마을은
공촌(孔村)이라 한다. 궐동에서는 옛날부터 전해져 오던 마을공동의 제의인 산신제가 있었으며
그 문서 또한 전하고 있다.
마을에 전하는 문서에 의하면 산신제는 매년 시월상달 초하루였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러
나 사정에 따라서는 초이렛날 거행되기도 하였다. 윗마을(대호밭)과 함께 산신제를 진행하였던
기억은 없으나 적어도 문서에는 두 마을이 함께 제의를 진행하였던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그리
고 시월 초하루라면 구월 그믐날 제사를 지내 시월 초하루에 끝나는 것이었다고 하며 이렇게 하
는 이유는 부정이 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4) 『오산시의 역사와 문화유적』, 오산시, 2005.
烏山市 마을신앙의 傳承實態 考察 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