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2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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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라에는 누룩을 사용한다. 특이한 점은 다른 사람은 신을 수 없고 오직 제관만이 신는다는 신
발이 한 켤레 있다.
11. 【벌음동】
벌음동의 산제사는 음력 시월 달에 날을 봐서 1일부터 10일 안으로 지냈다. 산제사를 지내는
산은 웬수골이라고 했으며 당집은 없었다. 소나무를 신목으로 하여 그 곳에 제당을 마련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소나무는 고목이 되어 없어진 상태이다.
술은 전 날 당주집에서 빚는다. 그리고 밤12시에 제사를 지냈다. 제물은 과일과 백설기시루
떡, 소머리 큰 것 하나, 포와 적을 올렸다. 당우물이 있어 제사에 올린 음식은 당우물로 준비하
였다.
12. 【서동】
동의 마을제사는 두 가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마을주민전체가 참여하는 제사이
고 하나는 유씨들이 중심이 되어 행하는 제사였다.
먼저 마을주민 전체가 참여하는 마을제사는 20여 년 전까지 전승되었다. 당제사는 음력 10월
보름에 지냈는데 정남면 음양리를 넘어가는 고개에서 산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돼지 한 마리를
잡고 떡도 한 시루를 해서 상도 안당하고 부정도 없는 제관 두 사람이 지냈고 축문도 있었다고
한다.
한편 마을 뒷산을 면화산이라 하는데 이 곳에서도 산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여기는 유씨 집성
촌이므로 실질적으로 유씨들이 중심이 되어서 지냈다.
13. 【서랑동】
집은 없었고 소나무를 위하였으나 이도 지금은 고사가 되었으며 그 흔적도 찾기 어렵다고 한
다. 하지만 비록 관리가 되지 않아 엉망이지만 현재에도 산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당우물은
남아있다. 산제사를 ‘산지’ 한다고도 했다고 한다. 산제사를 지내는 날에는 당주를 비롯하여 이
장, 반장 등 마을의 유지들이 함께 제당으로 올라간다.
서랑동에서는 소머리와 팥시루떡, 조라술, 삼색과일, 포 하나를 제물로 하여 비교적 간단하게
200 김용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