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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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신석기시대의 오산
1. 신석기시대 개관
기원전 10,000 년 경 추운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의 기후가 오늘날과 같이 따뜻해지면서 구석
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바뀌었다. 19세기에 만들어진 신석기시대 개념은 구석기시대의 타제
석기에 이어서 새로운 마제석기(磨製石器)를 사용한 시대를 의미했다. 이것이 20세기 전반 영
국의 고든 차일드가 구석기시대는 수렵채집사회로, 신석기시대는 농경과 목축으로 대표되는 식
량생산의 개시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여기에 정주마을, 토기, 마제석기가 함께 등장하는 것
으로 정의했으며, 이를 “신석기 혁명”으로 불렀다. 그러나 신석기시대 정의는 지역에 따라 다른
기준을 따르고 있는데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에서는 식량생산에 앞선 토기의 등장을 신석
기시대 시작의 지표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신석기시대 유적이 확인된 곳은 기원전 10,000년에서 8,000
년 사이로 편년되는 제주도 고산리유적이다. 여기에서는 식물 줄기 등 섬유질이 혼입된 흙으로
빚은 민무늬토기와 덧무늬토기〔隆起文土器〕, 그리고 구석기시대 타제석기인 세석기(細石器)의
전통을 이어받은 석창이나 석촉이 다량 나왔다. 최근 이 유적에서 수십기의 집자리가 발굴되어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제주도 이외의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6,000년 경으로 연대가 밝혀진 유
적들이 남해안과 동해안에서 확인되어 상당한 시기 차를 보이고 있다. 다만, 인접한 중국과 러
시아 연해주, 일본 규슈 등지의 기원전 10,000년을 상회하는 신석기시대 유적에서도 고산리유
적과 유사한 양상이 확인되는 점에서 앞으로 한반도에서도 비슷한 시기의 유적이 발견될 것으
로 예상된다. 한반도의 신석기시대 토기 문화는 부산 동삼동유적, 울산 신암리유적 등 남해안과
양양 오산리유적, 고성 문암리유적 등 동해안지역에서 덧무늬토기가 유행한 이후에 빗살무늬토
기가 북한의 대동강유역을 비롯해서 남한 각지로 확산된다. 빗살무늬토기는 서북한지역의 궁산
리유적, 지탑리유적, 그리고 남한지역의 서울 암사동유적, 하남 미사리유적, 김해 수가리유적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은 집자리가 중심을 이루는 마을유적과 해안가나 섬에서 확인되는 조개더
미유적이 대부분이다. 마을유적은 서울 암사동을 비롯하여 인천 운서동, 하남 미사리, 안산 신
길동, 화성 석교리, 양양 오산리, 고성 철통리유적 등 중부지역에서 많이 확인되고 있다. 집자
리 내부 바닥에는 화덕자리와 기둥구멍 정도만이 남아 있다. 화덕은 조명·난방·취사 기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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