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6 - 오산문화총서 3집
P. 236
기를 기대하던 국민들의 정치 민주화 욕구가 매우 컸다. 그러나 또다시 군사 정권이 들어서는
징후를 보이자, 그해 5월 15일 대규모의 학생 시위가 대도시에서 일어났다.
1980년 5월 17일, 신군부는 전국에 비상 계엄령을 내렸다. 다음 날인 5월 18일, 신군부는 정
치 민주화를 요구하는 광주 시민을 총칼로 살해하여 진압하였다. 5월 31일, 신군부는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1980년 10월 27일, 대통령 임기 7년 단임 간선제 선출의 새 헌법이 공포되었다. 1981년 3월,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해 당선된 신군부 출신의 전두환 대통령이 취임하였다.
평생교육을 헌법에 명문화한 정부에서는 ‘교육혁신’을 내걸었다. 국민정신교육, 전인교육, 과
학기술교육, 평생교육에 역점을 두었다.
이에 따라 오산의 각 학교에서는 깨끗하고 정돈된 학교상, 사랑과 정성의 교사상, 충·효·예
를 실천하는 학생상 정립에 주력하였다.
4. 제6공화국 시대
제6공화국은 1987년 10월 29일부터 2017년 12월 현재까지 지속되는 정치체제이다. 5년 단임
의 대통령 국민 직선제로 개정한 헌정 체제이다.
1987년, 군사 정권을 끝내고 민주적 절차에 의한 새 정부를 만들자는 국민들의 요구가 거세었
다. 국민들의 요구는 결국 군사 정부와 야당 지도자들의 협상을 이끌어 내었다. 1987년 6월 29
일, 민주정의당 대표가 발표한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이었다.
1987년 10월 29일, 새로운 헌법에 따른 국민투표에 의해 신군부 출신의 노태우 대통령이 선
출되었다.
‘보통사람들의 사회’를 표방한 노태우 정부(1988.2~1993.2)는 교육개혁심의위원회를 두었다.
주요 교육정책은 대학 자율화, 대학입학평가 방법의 개선, 대학 입학정원제, 고등학교 교육과정
의 정상화 등이었다.
교육정책의 특징은 학교 교육의 자율화였다. 이에 따른 문제점으로는 교육 민주화를 외치는
교직원노동조합의 탄압과 1,500여명 교사들의 해직이었다.
1992년 12월 18일, 국민투표에 의해 김영삼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정부(1993.2∼1998.2)는 교육개혁위원회를 두었다. 교육개혁위
원회에서 추진한 주요 교육개혁방안은 국립대 국영수 위주 대학별고사 금지, 종합생활기록부
234 임종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