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2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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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오산서당
1900년 이전에 설립된 오산서당(烏山書堂)은 이 지역의 유지들에 의하여 운영되었다. 1913년
에 오산서당의 학생 수는 47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오산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면서 오산서당
은 일본인 교장의 지도 감독을 받게 되었다. 1913년 9월 28일 이후, 오산서당의 학동들도 반강
제적으로 일요일 일어 강습회를 받게 되었다. 그로부터 전통적으로 이루어지던 훈장지도의 서
당 교육은 사라졌다.
b. 참봉서당
1890년 경, 당시 수원군 정남면 제기리에 참봉서당(參奉書堂)이 개설되었다. 이 지역의 유생
김홍식(金弘植)이 자택의 사랑방에 개설하였다. 훈장 김홍식은 조선 고종 황제 때에 과거시험에
급제하여 전위(前衛) 참봉을 지낸 인물이었다.
1928년 이후 일제의 탄압과 감시가 심해지고 오산공립보통학교와 정남공립보통학교가 세워
지면서 문을 닫았다.
Ⅲ. 근대 교육의 시작
1. 소학교 설립
1) 오산공립심상소학교
1870년대 조선 말엽, 외국과 수교를 맺고 문호를 개방하면서 개화사상이 싹텄다. 외국의 새로
운 교육제도 및 기술을 도입하면서 근대식 학교교육이 시작되었다. 1910년 8월 한일합방 이후
오산지역에도 소학교와 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1907년 4월, 오산 공립 심상소학교(尋常小學校)는 일본인 자녀를 교육시키고자 설립되었다.
일부 한국인 자녀도 입학할 수 있었다. 수업 연한은 6년이었고 3개 학급에 교원 수는 3명, 생도
수는 82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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