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7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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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려시대의 역사교육 자료
1) 조세를 보관하던 독산성
고려시대의 독산성은 조세(租稅)와 군량(軍糧)을 보관하던 쌀 창고로 이해하여야 한다. 독산
책의 구축, 보적사의 유래 등이 그 증거다. 그러므로 독산의 기본적인 의미는 ‘쌀독의 독산’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간장, 된장, 고추장의 장독과 김칫독, 술독, 쌀독의 독산(禿山)이다. 선사시대
이래 쌀을 비롯한 모든 곡물은 흙으로 빚은 독에 담아 보관하였던 것이다.
2) 독산 보적사의 유래
독산 보적사는 본래 백제 때에 세운 유서 깊은 절이었다. 고려시대에 어떤 용도로 다시 수축
(修築)되었다. 용주사가 기록하는 ‘용주사의 말사 보적사’의 내력에 그 단서가 보인다.
독산성에 있는 보적사는 백제시대의 절이었으나 고려시대에 수축되었다고 전한다. 어느 해 흉년이
들어 굶어 죽는 백성이 많은 해였다. 이때에 보적사 경내의 바위틈에서 쌀알이 물처럼 솟아 나와 굶
주린 고을 백성을 구제하였다. 그래서 절의 이름이 보적사(報積寺)라고 칭명하였다고 한다.
오산시청 홈페이지에 기록된 ‘보적사’에 대한 내력은 다음과 같다.
보적사(寶積寺)는 현재 독산성(禿山城) 동문 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창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
만 백제 아신왕 10년(401)에 전승(戰勝)을 기원하기 위하여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보적사’라는 명칭에는 재미난 유래가 전해지는데 옛날 삶이 궁핍한 노부부가 쌀 두되만 남게 되자
구차하게 굶어 죽느니 부처님께 공양하기로 마음먹고 공양 후 집에 돌아오니 곡간에 쌀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이후 열심히 공양하면 보화가 쌓이는 사찰이라 하여 보적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위의 기록에서 공통되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독산 보적사는 백제시대에 창건된 절이라
는 것이다. 그 둘은 독산 보적사에 쌀을 비축하였다는 것이다.
백제 아신왕이 독산성에 절을 세웠다는 것은 영묘사(靈廟寺)의 성격이다. 전쟁을 앞두고 하늘
에 기원하는 고유제나 전장에서 죽은 병사들의 영면을 기원하던 사찰이다. 아신왕이 전승을 기
오산교육의 백년지대계 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