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6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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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9> 곶산(串山,花山)


                        백제초기 역사에 등장하는 독산과 구천의 역할은 토경 방어의 목적이었다. 낙랑과 말갈의 침
                      입을 경계하여 독산과 구천에 책(柵)을 세웠다는 것이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온조왕 2년 3월, 말갈(靺鞨)의 침범을 경계하여 병기(兵器)를 수선하고 양곡(糧穀)을 비축하였다.
                         3년 9월, 말갈(靺鞨)이 북쪽 토경을 습격하였다.
                         8년 7월, 위례성의 북쪽에 마수성(馬首城)을 쌓고 병산책(甁山柵)을 세워 낙랑(樂浪)과 불화(不和)하
                         였다.
                         10년 10월, 말갈이 북쪽 토경을 습격하였다.
                         11년 7월, 독산(禿山), 구천(狗川)에 책(柵)을 구축하여 낙랑과의 통로를 막았다.



                        위의 기록에서 책(柵)의 의미는 나무 울타리 또는 토성으로 쌓은 성책(城柵)이다. 설명을 덧붙
                      이면 독산과 구천(황구지천)에 토성을 쌓아 해자(垓字)로 삼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원시 고색

                      동에는 황구지천을 따라 남쪽으로 길게 쌓았던 토성이 남아있다. 그러므로 지금도 이 마을의 이
                      름은 고색동(古塞洞)이다. 고색이란 ‘오래된(古) 요새(要塞)’를 의미한다.
                        이 사료에 근거하면 독산책은 낙랑과 말갈의 침입을 경계하여 쌓은 성책이며 독산책에는 쌀

                      독(禿)에 군량(軍糧)을 비축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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